’비핵화 개념도’를 담은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은 제자리걸음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초기에는 순항하는 듯했지만 협상의 고비고비 마다 악재가 돌출하고 북한의 핵포기 의지를 둘러싼 진실게임까지 등장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 시계’는 원점으로 되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9.19 공동성명이 체결된 것은 2005년 9월19일 6자회담 2단계 6차 회의에서다. 2003년 8월 6자회담이 열린 지 2년여만에 가까스로 향후 비핵화로 가는 긴 여정을 담은 조감도가 마련된 순간이었다.

이른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이 비핵화를 취하는 수준에 맞춰 나머지 5개국이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제공하는 개념의 로드맵이었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방코델타아시아(BDA)내 북한자금 동결 문제로 불거진 이른바 ’BDA 사태’로 다시 오랜 교착국면을 보내야했다. 그 와중에 북한은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에 이어 10월 마침내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안 채택 등으로 북.미간 극한대치로 치달을 것 같았던 6자회담은 아이러니하게도 핵실험 이후 본격적인 협상단계에 돌입했다. 그 결과 2007년 1월 베를린에서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 시작 이후 처음으로 사실상의 양자회담을 했다.

미국내 협상파를 대표하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간 양국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에서 BDA 해법과 이른바 1차 비핵화 조치의 윤곽이 마련됐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2월 제5차 6자회담이 재개됐고 6자 차원의 비핵화 1단계 비핵화 시공도면에 해당되는 2.13합의가 탄생했다.
‘북한이 핵시설 폐쇄 봉인(1단계)과 불능화 및 신고(2단계)를 이행하는 데 따라 나머지 5개국은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따라 같은 해 6월 BDA 사태가 풀린 뒤 곧바로 북한은 핵시설 폐쇄에 들어갔고 중유 5만t(한국)이 북한에 제공됐다.
이어 다시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이 9월 제네바에서 회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제6차 6자회담 2단계회의의 결과로 비핵화 2단계 시공도면이라 할 수 있는 ’10.3합의’가 발표됐다.
북한은 당시 불능화와 신고를 그해 말까지 완료하겠다고 합의했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일정한 진전은 거뒀다. 북한은 약속했던 불능화 조치 11가지 중에서 8가지를 완료했거나 완료를 앞두고 있었고 ▲폐연료봉 인출 ▲연료봉 구동장치 제거 ▲사용전연료봉 처리 등 3가지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나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규명할 핵 신고서가 걸림돌이었다.
치열한 수싸움 끝에 북한과 미국은 2008년 4월 싱가포르에서 양자회담을 열고 타협안을 찾았다. 이른바 우라늄농축(HEU와 연관된 문제) 및 북한의 핵확산 문제와 플루토늄 문제를 분리하는 방안이었다.
결국 북한은 2008년 6월 자신들의 과거 핵활동을 담았다는 신고서를 중국에 제출함으로써 상황은 다시 풀리는 듯했다. 북한은 이 시기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까지 폭파시키는 장면을 전세계에 공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고서 내용을 확인하는 검증 문제가 거대한 암초로 등장했다. 검증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비가역적 국면’인 핵폐기 단계로 나아가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바로미터였다.
한국과 미국 등은 검증은 신고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에 2단계가 완료되기 전에 최소한 검증원칙을 담은 의정서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2.13합의’에 검증은 적시되지 않았으니 이 문제는 3단계(핵포기)에 가서야 의논할 수 있다고 버텼다.
결국 작년 12월 열린 6자 수석대표회담에서 참가국들은 2단계를 올해 3월까지 마무리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했으면서도 끝내 합의문에는 담지 못했다.

올해 1월 미국 민주당 출신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한 이후에는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했다. 북한은 4월 장거리로켓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 등 대대적인 도발카드를 써가며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다시금 ’핵 시위’에 나섰다.
북한은 특히 지난 4월 말 영변 핵시설에서 재처리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6월 중순 외무성 성명을 통해 새로 추출되는 플루토늄 전량의 무기화와 우라늄농축 작업의 착수를 선언함으로써 ‘2.13합의’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9월초에는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라늄 농축에 성공하고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추가 플루토늄 확보와 무기화를 진행 중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게 했다.
이렇듯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이 뚜렷한 진전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북한의 핵포기와 상응조치를 명료한 형태로 구현해낸 9.19 공동성명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유도하는 가장 유용한 합의의 틀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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