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설계도로 평가받는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지19일로 4년을 맞는다.
2005년 9월13일부터 19일까지 열린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담에서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대표들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채택한 9.19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지붕을 북핵 포기와 상응조치(인센티브)라는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경제.에너지 지원을 해주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북한이 미국은 물론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함으로써 두개의 기둥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모양새도 갖추고 있다.
공동성명이라는 합의문 형식은 외형적으로 기존에 채택되던 의장요약이나 의장성명에 비해 높은 수준이며 정치적 구속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됐다.

6개항으로 구성된 9.19 공동성명의 첫 문장은 ’6자는 전원일치로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핵 포기 범위와 평화적 핵 이용권, 경수로 제공 문제를 1항에 담았다. 특히 경수로는 북한이 흑연감속로 대신 경수로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공동성명 채택의 최대 고비로 작용했으나 결국 ’적당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한다’고 기회의 창을 열어놓는 것으로 정리됐다.

핵 포기 범위와 관련해서는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약속’하는 것으로 했다.
이 시점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한국 영토에 핵무기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이 선언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 등과 핵 재처리.우라늄 농축시설 보유를 금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 시험에 성공했다는 최근 북한의 주장이 이 조항에 직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문제도 적극적으로 담겼다. 우선 1항에서 미국은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하고 있다.

또 2항에 ’6자는 상호관계에서 유엔 헌장의 원칙과 목적을 준수하고 국제관계 규범에 따르기로 했다’며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자안전보장보다는 양자를 통한 해결을 선호한 북한의 의사가 반영될 것으로 평가됐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의 포럼 구성도 포함돼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는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이 모두 대북 에너지 제공 의사를 밝혔음이 성명에 담겼다.
이와 함께 성명 채택 두달여 전 한국 정부가 밝힌 대북 200만㎾ 송전계획도 재확인했다. 아울러 ’6자는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공동노력을 다짐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이렇게 보면 9.19 공동성명의 내용은 북한의 핵문제 뿐 아니라 냉전구도 해체와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 동북아 안보협력의 밑그림이 모두 담긴 스펙터클한 것이었다.
특히 공동성명은 북한이 문서를 통해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통해 핵포기를 받아들인 첫번째 문서였다.
하지만 철저하게 행동 대 행동 원칙을 토대로 했고, 막판까지 쟁점이 된 핵 포기 범위와 평화적 핵 이용권, 경수로 문제 등에 이른바 ’창조적 모호성’이 폭넓게 적용됨으로써 두고두고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핵무기를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과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핵무기를 핵 프로그램과 구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게다가 ’포기한다(abandon)’는 표현은 북한의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뉘앙스가 강했다. 폐기 또는 해체한다(dismantle)는 표현과 맥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6자가 합의한 것도 상당한 문제를 내포했다. 비핵화의 단계를 1단계(폐쇄)과 2단계(불능화), 3단계(신고.검증), 4단계(폐기)로 상정했지만 실제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불투명했다.
1단계와 2단계 실현을 위해 6자회담은 2.13합의와 10.3합의를 잇따라 채택했다. 하지만 고비고비마다 북한은 전체 국면을 세분화해 매 단계별 보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북핵 진실의 문으로 평가되는 ’검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6자회담은 현재 작동을 멈춘 기관차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이 초래된 원인을 지적하면서 “9.19 공동성명이 내포한 내재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을 한다.
정부의 고위 소식통은 18일 “9.19공동성명은 약속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정교한 로드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요한 약속을 신속하고 ’비가역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물론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발생한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로 인해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천계획이 미흡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의 의미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6자회담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다시 9.19 공동성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서 추이가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현재 북한을 향해 6자회담에 복귀해 9.19 공동성명 합의사항에 따른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경우 북.미 관계정상화, 체제보장,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가시화될 미.북 대화는 물론 6자 프로세스가 재가동돼 9.19 공동성명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행할 로드맵을 확고하게 마련할 경우 9.19 공동성명의 의미가 한층 실천적 모습으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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