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양자(兩者) 대화를 통해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그동안 미국이 주장해 온 '선(先) 6자회담 복귀, 후(後) 양자 대화'의 조건으로는 북한이 움직일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양자 대화를 통한 회담 복귀 설득' 정책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Bosworth) 대북정책 특별 대표는 최근 서울 방문에서 '서두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6자회담 개최에 도움이 된다면 미북 대화를 먼저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우리 정부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작용한다. 우선,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응징'하는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1874호가 채택된 후, 국제적인 대북 공조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2개월간의 강력한 대북 압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는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와의 대화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해군 제597연합부대를 방문해 종합기동훈련을 관람하고 있다. 13일 이 사진을 보도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구체적인 촬영 일시와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조선중앙통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빌 클린턴(Clinton) 전(前) 대통령을 불러들이고, 미북 대화를 적극 요청하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대화 요청 거부가 북한의 추가 핵실험으로 이어져 그 '책임'을 미국이 지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원칙이 분명한 이상, 북한이 모든 채널을 동원해 대화 재개를 요청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런 대북 정책 변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CNN 방송은 "오바마 행정부가 극적(劇的)인 정책 전환으로 북한을 6자회담 체제로 복귀시키기 위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가질 의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ABC 방송은 "미북 양자회담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토록 원하던 국제적 지위를 인정해준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으며 ▲6자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원칙이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 워싱턴의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곧 재개되는 미북 접촉을 '핵 군축 협상'의 시작으로 활용하려 하겠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오바마 행정부는 미북 대화가 6자회담을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안다. 미국은 이번에도 북한의 유화 전술에 속으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무척 신중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미북 간의 접촉이 곧 미국의 양보로 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부시 행정부에선 크리스토퍼 힐(Hill)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해 대북 협상 내용을 국무부 내의 비확산 팀과 협의하지 않고 적지 않은 양보를 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 문제까지 심각하게 제기되는 시점에서 북한에만 특수한 고려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곧 재개될 미북 대화가 비핵화 협상의 시작이 될지, 오히려 제재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지 불투명하다. 미국과 북한의 첫 공식접촉에서 북한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가 앞으로의 미북관계를 규정할 가능성이 크다./이하원 특파원 May2@chosun.com
임민혁 기자 lmhco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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