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4일 “우라늄 농축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결속단계에 들어섰다”고 발표, 지난 7년간 “우라늄 농축은 없다”며 국제사회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여왔음을 스스로 재확인했다.

지난 6월 13일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 채택 직후 “우라늄 농축이 시험단계에 들었다”며 처음 ‘자백’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진행상황을 친절하게 업데이트”(정부 당국자)한 것이다. 이는 또한 최근 잇단 대남·대미 유화책으로 대화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뒤편에서는 계속 핵 능력을 진전시켜 온 북한의 이중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7년간의 ‘우라늄 사기’

우라늄 농축이 북핵 문제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02년 10월 미국의 제임스 켈리(Kelly)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였다. 켈리의 고농축우라늄(HEU) 의혹 제기에 대해 강석주 외무성 부상은 “우리는 HEU를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 한마디로 8년을 넘게 이어오던 ‘제네바 합의’는 휴짓조각이 됐다. 이른바 2차 북핵위기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태도가 바뀌면서 미·북 간의 지루한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북한은 2003년 1월 29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그(켈리)의 말에 대해 인정할 것도 없었고 부정할 필요조차 없다”고 한 데 이어, 다음 날에는 리철 주제네바 대사가 “농축우라늄 계획을 시인한 일이 없음을 명백히 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6자회담 과정에서도 미국의 압박에 북한은 “없는 걸 어떻게 있다고 하느냐. 미국 적대세력의 날조이자 농간”이라고 우겨왔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의 대북 라인 등 국내 좌파 성향 인사들이 “미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우라늄 실체를 부풀려 동북아 화해 협력무드를 차단하려 한다”면서 북한을 거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라늄 진실게임은 지난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과정에서 미·북 수석대표가 “우라늄 농축 부분은 미·북 간 별도의 비공개 각서를 통해 해결한다”고 합의하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지난 6월 북한의 실토로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은 애초부터 북한의 ‘모호성’과 ‘부인’ 전략에 철저하게 농락당한 셈”(외교소식통)이다.

◆숨길 수 있어 더 위험한 우라늄 농축

북한이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을 상대로 이처럼 오랜 기간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우라늄 농축의 은닉성 때문이다. 우라늄탄 제조공정은 플루토늄탄처럼 대규모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데다 방출되는 방사능의 양도 매우 적어 위성 등 외부의 감시가 어렵다.

원심분리기만 확보하면 공장·광산·군부대·지하실·땅굴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작은 면적 안에 간편하게 은닉·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농축우라늄이 미국 등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고 외국에 넘겨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더 민감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이 90년대 후반에 파키스탄으로부터 20여기의 원심분리기를 들여오고, 러시아측으로부터 150t의 고강도 알루미늄을 수입한 점 등을 근거로 북한의 우라늄 농축 개발을 나름대로 확신했지만,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북한에 끌려 다니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우라늄 농축 기술 수준이 어느 단계인지, 성공했다면 무기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농축우라늄을 확보했는지 등 핵심정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남북협력팀장은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고강도 베어링 등 부품을 북한이 자체생산할 능력이 없고, 이들 물자는 수출입이 강하게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기술 수준이 완성단계는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 확보에 ‘국가적 명운’을 걸고 있다는 점에서 우라늄 농축 기술 및 시설 확보가 일반적인 예측 범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민혁 기자 lmhco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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