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대한적십자사 4층 강당에선 80대 고령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또 한번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운명을 가른 컴퓨터 추첨 결과에 기쁨의 환호를 지르거나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추석전 이산가족 상봉 합의가 이뤄진 직후 상봉 예비후보자 300명을 뽑기 위해 실시된 컴퓨터 추첨 결과 다시 '떨어진' 상봉 신청자들은 자신들로선 어찌 할 수 없었던 전쟁으로 빚어진 60년 이산의 한에 말라버린 것 같았던 눈물이 다시 솟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8만7천여명의 신청자를 대상으로 최종 상봉자 100명의 3배수를 선정하는 추첨은 컴퓨터 덕분에 단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2년만에 재개되는 이산가족 상봉에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추첨장을 찾은 올해 80세의 이정옥(서울 방배2동) 할머니는 끝내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자 "남편과 스물세살에 헤어지고 아이 둘과 살아 왔는데 이제 나이 80이 되니 자꾸 서럽고 이대로 가다가는 올해 87살인 남편을 영영 못 볼 것 같다"면서 연방 눈물을 닦았다.
이씨는 그동안 7차례나 추첨장에 직접 나왔고 이날도 오전 9시부터 나와 하루종일 기다렸다.

유종하 한적 총재가 다가가 "(앞으로도 상봉이) 계속 되니까,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니까..."라며 위로하려 했으나 "남들이 상봉하는 것을 뉴스로만 봐 오고 나는 신청한 지 10년이 넘도록 되지 않고 있다"는 이씨의 상심을 달랠 수는 없었다.

올해 85세의 임재실(서울 잠실) 할아버지는 신청한 지 15년만에 이름이 뜨자 "됐다"며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불렀다.

북한에 있는 여동생과 조카들을 찾는다는 임씨는 이번에 전쟁 때 헤어진 혈육들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말했다.

한적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추첨 현장에 와서 지켜본 상봉 신청자중에서 당첨된 경우는 처음"이라며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00대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된 것 아니냐", "원래 2순위여서 안 될 것 같았는데 돼서 놀랐다"는 등의 웅성거림은 감동을 일으키기보다는 한스러운 60년에 여생이 얼마 안되는 이산가족들의 비원을 마치 아파트 청약자 추첨하듯 '운'에 맡겨둬야 하는 분단의 현실을 새삼 일깨울 뿐이었다.

이번 적십자회담에서도 상봉 규모는 남북 양측이 각 100명에 그침으로써 현재 방식대로라면 대기중인 신청자 8만명 대다수에겐 상봉 기회가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988년부터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만7천여명중 이미 4만명이 기다리기만 하다 세상을 떴고 남은 사람들도 고령임을 감안하면 남은 시간은 더더욱 빠르게 흐를 수밖에 없다.

임재실씨도 1차 관문인 300명 예비후보자에 '당첨'됐을 뿐 최종 상봉자 100명에 들지는 아직 확실치 않은 상태. 그는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만 크게 지어 놓지 말고 하루 속히 이산가족 상봉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적은 300명중 건강검진, 상봉의사 등을 확인한 뒤 제2단계로 200명으로 명단을 압축, 북측에 북측 가족의 생사확인을 거쳐 다음달 중순 최종 100명의 명단을 북측과 교환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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