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다가 136일 만에 돌아온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는 14일 가족들에게 "북한이 잡아갈 때 (혐의를 적은) 통지문을 죽 읽었는데 이해가 안 됐다"며 "잡혀갈 건덕지(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금방 나올 줄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한 가족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한에선 김일성·김정일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데 (유씨가) 김정일 얘기와 김정일 동생, 그리고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김정운 얘기를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3월 30일 유씨를 체포하면서 "체제를 비난했고 여성 종업원을 변질·타락시켜 탈북을 책동했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또 북측이 '여성 근로자를 변질·타락'시켰다고 주장해 '유씨가 북한 여직원에게 한국에서 함께 살자고 한 것 아니냐'는 설(說)이 나온 데 대해서는 "북한 여직원들한테 커피 한 잔씩 주면서 친절하게 대한 것밖에 없다"며 "오히려 '사상과 체제가 다르니 남한에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유씨 체포 후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5월 15일)라는 표현을 쓰며 유씨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려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에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했을 수는 있지만 137일이나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붙잡아둘 이유는 안 된다"고 했다. 유씨도 "(북한이 자신을) 인질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 가족이 전했다. 북한은 유씨를 풀어주면서 조사한 내용을 읽어내렸지만 "구체적인 정황 증거나 물증을 제시한 것은 없고 '반공화국 책동' 등 잡아갈 때 밝혔던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정부 당국자)는 것이다.

유씨는 억류돼 있던 기간 개성 지역의 한 여관에서 북한 관계자 4명이 지키는 가운데 혼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 가족은 "개성공단 내의 여관"이라고 전했지만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공단 안에는 여관이 없다"며 "개성시내의 민속여관이나 자남산여관 등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씨는 조사 중 가혹 행위는 없었다고 한다. 통일부 당국자도 "유씨 몸에 외상은 없다"고 했다. 유씨는 억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가 모두 끝났으며, 풀려나기 전 "조사한 내용이 다 맞느냐"는 북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뒤 석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는 석방 당시 상황에 대해 "어제(13일) 오후 북한 관계자가 갑자기 가자고 해 오후 3시쯤 여관을 출발했으며 석방 직전까지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의 형은 "13일 새벽에 정부 관계자가 전화로 '유씨가 석방될 가능성이 있으니 서울로 올라오는 게 좋겠다'고 알려줘 상경해 홍양호 통일부 차관을 만나 점심을 함께한 뒤 파주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동생을 기다렸다"고 했다. 현재 서울 아산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고 있는 유씨는 아침에 "밥 대신 빵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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