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 소식이 현 회장 방북 사흘째인 12일 밤까지도 전해지지 않음에 따라 여러 관측들이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일정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심경 변화나 현안 조율 과정에서의 차질 등 ‘돌발 변수’가 발생해 아예 면담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 면담 소식 사흘째 없어 = 12일 오후 11시 현재까지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북한 매체의 보도도 없고 현 회장 측으로부터도 회동 사실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날도 면담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 측이 이날 체류기간 추가 연장 계획을 통일부에 통보해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로선 13일 중 귀환한다는 계획에는 변동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아직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이 불발됐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게 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현 회장이 13일 오전 중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오후에 돌아올 가능성도 있고 13일 중 다시 체류일정을 연장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현 회장은 숙소인 평양 교외의 백화원 초대소를 떠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13일 오전 중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평양에서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상황은 아니라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또 김 위원장이 함흥에 체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현 회장이 체류 일정을 추가로 연장한 뒤 13일 함흥으로 이동, 김 위원장을 만나는 상황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면담 불발 가능성은 = 현 회장은 앞서 11일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키로 함으로써 김 위원장과의 면담 성사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귀환 예정일 전날 밤까지 면담이 성사되지 않음에 따라 ‘불발’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게 됐다.

12일 중 이뤄질 것이 유력해 보였던 면담이 늦춰지고 있는 배경과 관련, 김 위원장의 일정 변수가 우선 거론된다. 함흥시에서의 현지지도 일정이 길어지거나 평양으로의 귀환에 모종의 장애 요인이 생겼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 매체들은 12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김 위원장의 함경남도 함흥시 일정을 잇달아 보도했다. 김정숙해군대학을 시찰했다는 보도가 오전 6시에 나왔고 함흥대극장에서 북한군 장병들과 함께 연극 ’네온등 밑의 초병’ 공연을 관람했다는 보도가 오후 8시20분께 나왔다.

김 위원장의 현지시찰 보도가 보통 전날 또는 2~3일전에 이뤄진 일정을 소개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이 이미 함흥을 떠나 평양에 와 있을 개연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 정부 관계자는 “오늘(12일) 하루 조석간에 두차례 보도된 일정이 모두 함흥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아직 함흥에 체류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이처럼 단순히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일정과 관련한 ‘변수’ 때문에 아직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면 13일 중으로 성사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사전 입장 조율에 차질이 빚어졌거나 김 위원장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면 면담은 물건너갈 수도 있다.

특히 지난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미국이 대북 제재의 고삐를 풀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자 대미관계 개선 행보에 발맞춰 대남관계를 함께 풀어나가겠다는 구상을 재검토해야할 필요성을 느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설사 현 회장과 김 위원장간 면담이 불발로 끝나더라도 현 회장이 북한의 대남라인 고위급 인사를 만나고 억류 근로자 유씨 석방을 이끌어 낸다면 소기의 방북 성과는 십분 거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대북 전문가는 “현 회장 체류 일정 연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지만 김 위원장이 아직 여러 여건상 남한 인사를 만날 단계는 아니라는 생각을 애초부터 했을 수 있다”며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다른 고위급 인사와 만나 건설적 협의를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