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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不信하되, 대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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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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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척 다운스(Downs)의 명함엔 그의 저서 ‘북한의 협상전략’이 명기돼 있다. 그만큼 북한이 구사하는 협상술 분석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미국의 커런트 TV 기자 2명을 억류했다가 석방하는 과정은 다운스 총장이 수년 전에 파악한 북한의 협상전략 그대로다.

그는 북한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상대방의 관심을 바꿀 사건들을 만든다고 보았다. 그리고 상대방을 수세에 몰리게 한 후, 자신의 관심사항을 우선적으로 협상하려 한다고 파악했다.

북한은 지난 3월 미국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준비에 대해 경고하고 있을 때 커런트 TV 기자 2명을 국경지대에서 붙잡아 억류했다. 그동안 이 지역을 취재한 숱한 남성 기자 대신 더 큰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미국 국적의 여성 기자를 붙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에게 12년간의 노동교화형을 내리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정보를 흘려 버락 오바마(Obama) 미 행정부를 곤혹스러운 상태로 몰았다. 또 모든 관심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1874호의 실행에 쏠리자, 빌 클린턴(Clinton) 전 미 대통령을 불러들여 세계의 이목(耳目)을 집중시켰다.

다운스 총장의 북한 협상술 분석을 조금 더 차용한다면, 북한이 추진할 다음 단계는 이미 협상된 조항에 대해 재협상을 주장하는 것이다. 2005년 6자회담에서 북한 핵 폐기를 합의한 9·19 공동성명의 변형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가 숙고(熟考)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김 위원장의 의도가 분명한 상황에서 북한이 조성하고 있는 대화분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계자들의 공통점은 한두 번씩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아본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합의문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을 경험한 후, 이번만큼은 북한과의 대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올해 초,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는 기자가 보는 앞에서 “북한의 행동에 대해서 반드시 보복(retaliate)하겠다”는 표현을 쓴 바 있다. 평소 온화한 성품의 그였지만 단호함이 배어 있는 목소리에서 북한이 이번에도 합의를 어기면 대화가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단호함을 바탕으로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동안 클린턴-부시(Bush)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 북핵 문제를 악화시켜온 것을 고려하면 이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입장을 계속 견지할 자신이 있다면, 북한이 지금 내밀고 있는 손을 뿌리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유엔 안보리의 1874호 대북 제재 결의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발동된 1718호 결의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북한을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북한이 위기상황에서 인내하는 능력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계속되는 제재에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침만 곧추세울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곤란하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특별대표 후보로도 거론됐던 미첼 리스(Reiss) 전 국무부 정책실장은 “북한을 싫어하는 것은 판단일 뿐, 정책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북한에 대해 인내하는 자세로 사상 유례없는 안보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대화에 나섰다면, 지금은 북한을 불신(不信)하되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노력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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