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개성을 거쳐 평양에 도착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일행. 2009.8.11/연합

10일 평양에 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 일정을 하루 연장했다. 11일 현대그룹과 통일부 등에 따르면 현 회장은 당초 12일까지 2박3일간 북한에 머물 예정이었지만 이날 북한 당국과 조율해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현 회장이 당초 1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면담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현 회장이 일정 연장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오진 않았지만 김정일과의 면담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현 회장이 지금 평양에서 여러 북측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지만 알맹이 있는 소득이 없는 것 같다”며 “좀 더 여유를 갖고 북측과 협의하기 위해 체류 일정도 늘린 듯하다”고 했다. 정보 당국자는 “현대그룹으로선 억류 근로자 문제뿐 아니라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재개 등 북측과 ‘패키지’로 풀어야 할 현안이 많다”며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안보부서 당국자는 “현 회장이 김정일을 만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고 했다. 우리가 제안한 여러 후보 중 북한이 현 회장을 지목한 점, 초청장에 ‘10일부터’라는 방북 시작 날짜만 있고 귀환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점, 현 회장 숙소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머물렀던 ‘백화원초대소’로 추정된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 때문에 “현 회장이 12일 또는 13일 중 김정일을 만난 뒤 억류 근로자를 데리고 오는 ‘클린턴식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국책연구소 연구원)는 관측이다. 그러나 미(美) 클린턴 특사 때는 도착 상황부터 요란스럽게 보도하며 맞았던 북(北)이 현 회장에 대해선 “평양에 도착했다”는 짤막한 보도만 하는 등 응대 방식엔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통일부는 억류 근로자가 풀려날 경우에 대비해 신병 인도 시나리오까지 짜둔 상태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10일 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방문해 상황을 점검했다.
현 회장이 사실상 ‘비공식 특사’로 방북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당장 북한에 줄 수 있는 ‘보따리’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반응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민간단체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늘리는 게 유력하다”고 했다. 최근 통일부는 2차 북핵 실험 이후 중단됐던 민간단체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재개했다. 현대측이 중국 등에서 옥수수를 사모으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박사는 “지금 북한에 절실한 것은 식량”이라고 했다. 실제 북한은 대북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 2~3곳에 “쌀을 사 달라”고 부탁할 만큼 식량 사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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