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 긴자(은좌) 거리가 돌연 자위대의 시가지 훈련장으로 변한다. 차량통행이 봉쇄된 도로를 육상자위대 화학 방호차가 진입해 들어온다. 뒤를 따르는 것은 장갑차 부대. 캐터필러(무한궤도)의 마찰음이 고막을 찢는 듯하다.

하늘은 항공자위대의 무대다. 정찰기와 헬기부대가 등장해 어지러운 순회비행을 계속한다. 긴자 옆 하루미(청해) 부두. 웅자를 드러낸 해상자위대 수송함이 부대진출 훈련을 전개한다. 자위대 최정예인 제1공정대의 낙하산부대가 하늘을 수놓을지도 모른다. 소설이 아니다. 도쿄도(도)가 9월 3일 실시할 ‘방재 훈련’을 미리 그려본 것이다. 참가할 자위대 병력은 4000~ 5000명. 작년의 10배다. 게다가 육·해·공 3군의 합동작전으로 펼쳐진다. 계획대로라면 자위대는 더이상 ‘거세된 군대’가 아니다.

경찰·소방서를 제치고 자위대가 첫 주연을 맡은 방재훈련. 각본은 이시하라(석원신태랑) 도쿄지사가 짰다. 그는 자위대 출동이 ‘외국인 범죄대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불법입국한 3국인·외국인이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경찰력 갖고는 치안유지가 안된다. ”

훈련은 1923년 관동대지진의 재발을 가상해 짜여졌다. 이시하라 지사에 따르면 대지진이 터지면 외국인 소동이 가장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른 바 ‘불령 외국인’에게 자위대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중국이나 북한에 대한 위압도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엉뚱한 비약을 거듭하고 있다. 무엇보다 역사를 정반대로 해석하는 상상력은 놀랍기만 하다. 77년 전 관동대지진 때 소동을 일으킨 것은 외국인이 아니라 일본 우익이었다. 일본경찰의 묵인 아래 조선인 수천명이 살해당하지 않았던가.

방재훈련을 빙자한 ‘자위대 쇼’는 자위대의 복권을 노리고 있다. 국수화 추세의 일본사회에서 ‘외국인 위협론’은 좋은 핑계거리다.

/박정훈 동경특파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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