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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아바이' 이승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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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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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이 땅에서 행복해야지 그들이 희망을 가지고 통일을 위해 힘쓸 것이지요. 밝은 내일을 위해 그들이 우리 땅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조금만 신경써 주십시다."
지난달 말 열매나눔재단이 운영하는 파주시의 '메자닌아이팩' 박스 제조 공장. 탈북자 출신 직원 수십명이 한창 일하다 출출해지는 오후 3시쯤 갑자기 "아바이 동무 오셨다"는 외침이 터진다.

여성 탈북자들이 '아바이 동무'라며 팔짱을 끼며 반가워 하는 주인공은 이승보(62)씨.

농어촌공사 사외이사로 있는 그는 여느 때처럼 간식거리를 가지고 공장을 찾았다. 이날은 준비해온 수박과 자두, 우유로 즉석에서 화채를 만들어 돌렸다. 여름철 장마와 무더위에 지친 직원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웃음 꽃이 피었다.

이날 공장 직원 60여명분의 수박 화채를 준비하는 데 든 돈은 10만원. 이처럼 간식, 내복 등을 사가지고 잦을 때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공장을 방문하면서 쓰는 돈이 한달에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른다.

이씨를 이 집사라고 부르는 열매나눔재단의 최아란 팀장은 "연말정산용으로 우리에게 영수증을 건네 주는데 작년에 간식거리로 쓴 돈만 700만원이 넘고 올해 들어서도 2월 170만원, 3월 203만원, 4월 370만원이나 된다"고 귀띔했다.

지난 2월 음력 정월 대보름 때는 밤, 호두, 땅콩 등 부럼과 과일만 30만어치를 사들고 갔고, 4월엔 자신의 생일을 구실로 차를 전세내, 야유회를 갖는 바람에 400만원 가까운 돈이 들었다.

최 팀장은 이씨가 "평소 탈북자 직원들을 동생이나 자식같이 여겨서 지난해는 생신이 아닌데도 생신이라며 직원들에게 밥을 사기도 했다"며 "섬김의 상상력이 정말 기발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탈북자 돕기에 '큰 손'인 이씨가 돈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때 월 300만달러 수출고까지 기록한 가방제조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자금 뒷받침이 안돼 사업에 실패하고 친구가 마포구 성산동에 전세로 얻어 준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부인, 외동딸과 함께 5년째 살고 있다.

"다행히 그간 전세금이 한푼도 안 올랐다"며 웃는 그는 "사외이사로 200만원 받는데, 따로 수당 받는 것은 비밀로 마누라가 알면 큰일 난다"면서 기본적으로 수당은 탈북자 돕기에 쏟아 붓고 돈이 없으면 친구에게 빌려서라도 사다 준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만 돕는다는 말을 들을까봐 직장에 나가는 외동딸 수입까지 합쳐 월 100만원씩은 꼬박꼬박 저축하면서 언젠가 방2칸에 18평정도인 반지하방 탈출을 희망하고 있다.

그의 자가용차는 1t 소형 트럭이다.

과거 사업 실패후 옷가게 대리점을 거쳐 수십년째 당뇨병을 앓던 터라 귀농 결심을 하고 경북 성주에 내려가 참외농사를 지을 때 썼던 차량이다. 그는 농어촌공사 사외이사로서 이사회 회의 참석 때도 이 1t 트럭을 몰고 간다.

그는 사업 실패로 나락에 떨어졌다가 "기도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재기한 뒤 "받은 은혜를 나누자"는 마음에서 경기 의왕시에 있는 한 고아원에 달마다 후원금을 내고 회사내 봉사 단체에 참가, 연탄 배달도 하며 몸으로 봉사하기도 하다 탈북자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바로 자신이 6.25전쟁 당시 1.4후퇴때 원산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탈북자 1세대'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기도 하지만 "탈북자들은 남북대화의 물꼬가 터지면 '통일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나름대로 전략적인 생각때문이었다.

"과거 서독으로 넘어갔던 동독 이주민들이 나중에 동독 주민들에게 서독의 좋은 점을 전달해 동독에서 내부 동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거기에 생각이 미쳐 탈북자 돕기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그는 탈북자들에게 먹거리와 입을 거리만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해야 될 일, 받은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 건강을 지키는 방법 등 좋은 내용의 글을 복사해 마음의 양식도 건네준다.

"대부분 한번 보고는 그냥 휴지통에 던져버리지만 100명중 한명이라도 유심히 챙겨보면 됩니다."
그는 탈북자들이 자신을 '아바이', '삼촌', '아빠', '큰 아빠'라며 따르다가도 한순간 말없이 떠나버리지만 "그래도 밉지 않다"며 자신이 그들의 인생을 다 책임질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탈북자들가 정착에 실패해 겉돌면서 도시에서 손 쉬운 돈벌이만 생각하는 것이 안타까워 탈북자들을 농촌마을로 데려가 어떻게 잘 사는지 보여주고 "곡식도 북에서처럼 당에서 다 걷어가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가져간다"며 "정부에서 수매하면 나중에 식량지원 때 북에 있는 부모 형제들이 먹는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충남 당진군 '도비도'에 있는 약 5천만평 규모의 농업지구를 견학한 탈북자 15명이 농사를 짓고 싶다는 강력한 희망을 표시했다고.

농어촌공사 사외이사여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그는 "이곳은 농림부 소관의 국가 땅이라 통일부와 합의만 되면 수용 시설 부족으로 인해 동남아 등지에서 데려오지 못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데려와 이곳에서 함께 농사 지으며 자활하도록 해줄 수 있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탈북자를 돕는 일에 오지랖이 넓은 그는 실패하긴 했지만 중매도 이미 3차례 서 봤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농촌 총각과 탈북 여성의 만남을 주선하면 농촌 장가 문제와 탈북자 생활안정 문제를 한꺼번에 푸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도 있다.

장애아 및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는 그의 부인도 "시골에 볕이 잘 드는 넓은 마당 가진 집을 하나 마련해 장애인이나 오래된 환자를 모시고 도와주며 살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 이씨는 탈북자중 병든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을 부인과 함께 모시는 생각도 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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