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은 친구가 남아있지 않다" 클린턴, 보상엔 관심 없어
지난달 12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1874호가 발효된 후 40여일 만에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재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신선호 대사는 24일 "우리는 (미국과의) 공동 관심사에 관한 어떤 협상에도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날 폐막한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도 북한 대표단은 미국과의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1월 버락 오바마(Obama) 행정부가 출범한 후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그동안 스티븐 보즈워스(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파견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리고 4월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나 미국은 안보리 결의 1874호를 내세워 금융·무기거래·국제회의 등 전방위(全方位)에서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의 '대화 관심'에는 이렇게 국제사회의 변화된 대북 인식, 대북 압박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에 4차례 국무부와 국방부의 차관급 이상 고위 관리들을 중국에 보내 북한 압박을 요청,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미국은 또 북한이 그동안 해외에 수출하는 무기 관련 자금을 수령하는 창구로 활용해 온 아세안 국가들과 이 지역의 금융기관들에도 주의를 당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관련 의혹을 낳은 화물을 적재한 북한 선박 강남 1호가 미얀마에 기항(寄港)하지 못하고 회항한 것은 북한을 위축시켰다. 특히 북한의 '안마당'이라고 인식됐던 비동맹회의에서도 북한에 냉담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재개 신호를 보낸 것은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북제재 국면을 전환해 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일단 대화에 나서, 한·미 양국이 잇달아 제안한 '포괄적 패키지'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 주변에선 북한이 이미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북한으로 초청했거나 제3국에서 회담을 갖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으로선 또 그동안 국제사회가 주목해 온 '김정일→3남 김정운으로의 권력 승계' 절차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보고, 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병약해진 김정일 위원장은 대포동 미사일과 핵무기로 무장한 강성대국을 물려준다는 계획하에 오바마 행정부의 대화 제안을 무시하고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폈고, 이제 보유한 '핵심 카드'를 모두 사용했으니 협상 쪽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미북 대화가 재개돼 상호 구체적인 입장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가 시작될 경우, 지난 3월부터 억류된 미 커런트 TV의 기자 2명을 석방하는 문제를 우선 해결하자고 제안할 방침이다.

워싱턴 DC의 외교소식통은 "곧장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미국과,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북한의 입장이 서로 달라 대화가 시작돼도 쉽게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힐러리 클린턴(Clinton) 국무장관은 26일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친구가 남아 있지 않다"며 "북한이 대화에 복귀하는 것만으로 보상할 의사는 전혀 없다"는 말로 오바마 행정부의 협상원칙을 밝혔다./ 이하원 특파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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