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입수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급부상한 정운(26)씨의 16세 때 사진. 이 사진은 정운씨가 '박운'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의 공립중학교 7학년 재학 당시인 1999년 6월 급우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가운데 정운씨 모습을 확대한 것이다./연합

"아주 이른 단계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3남 정운씨를 후계자로 삼았다"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활동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建二)씨는 16일 발행된 도쿄(東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1992년 1월 8일 정운씨의 9살 생일파티장의 무대에 합창단이 올라와 '발걸음'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가사는 '탁탁탁 우리 김 대장의 발걸음 2월의 위업을 계승해'라는 내용이다"라며 "김 위원장의 생일은 2월 16일이므로, 김 대장은 정운씨를 말한다"고 말했다.

후지모토씨는 "김 장군(김 국방위원장)은 9라는 숫자에 대한 애착이 있다. 정운씨의 9살 생일에 소중한 노래를 발표한 것이다. 이때 (김 위원장의) 생각이 정해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남인 정남씨는 약탈한 여성으로부터 출산한 아이라서 뒷전이었다. 파티에도 거의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며 "또 차남인 정철씨는 배우를 동경, 근육증강제를 너무 많이 사용해 몸을 망쳤다. 13년간 화를 낸 적도 한번 밖에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약하다. 성격이 지도자로서 맞지 않는다"라고 나름대로 풀이했다.

이어 최근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모두 정운씨가 후계자로 지명된 시기라서다. '그가 한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정운씨와 처음 만났을 당시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1990년의 어느날 군복 차림이었던 정철씨와 함께 7살이던 정운씨를 만났다. 악수를 청하자 우호적으로 손을 잡았던 형과 달리 정운씨는 '이 녀석이 일본 제국에서 온 사람인가'라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정운씨와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놀아 주는 상대가 됐다"면서 "그러던 어느 날 모친인 고영희씨가 '꼬마 장군'이라고 부르자 '나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야'라고 큰 소리로 답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운씨가 18세가 됐던 때 "후지모토! 브이(V)하자"라는 전화를 받았다고도 소개했다. V는 담배를 말한다. 김 위원장이 금연을 해서 둘 사이에서는 이런 말을 썼다는 것이다.

후지모토씨는 "차를 타고 산길을 올라 농구장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때 정운씨는 차 밖으로 펼쳐진 거리의 등불을 보면서 '우리는 농구도 하고 승마도 하면서 매일 즐겁게 지내는데 일반 인민은 어떻게 지낼까'라고 했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후지모토씨는 최근 TV에 방송된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에 대해서는 "눈이 완전히 죽었다. 저래서는 더 지휘를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1982년부터 1983년까지 2년간 북한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그는 1987년 재입국했으며 2001년 4월 김정일 위원장을 위한 최고의 성게를 사러 간다며 북한을 떠나 일본의 시골 마을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북한을 떠난 이후 발간한 책 인세와 언론 인터뷰 사례금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보복이 우려된다면서 언론에는 항상 큰 선그라스와 머리 수건을 쓴 모습으로 나온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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