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과 관련, '경솔한 언동이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

다음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 전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 담화

얼마전 미국 대통령 부시가 또 다시 분수없이 우리를 걸고들었다.

그는 아페크 수뇌자 회의를 앞두고 한 기자회견에서 마치 미국이 조-미 대화를 원하고 있는데 우리가 응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였으며 지어는 우리의 최고지도부에 대해 지나치게 의심하고 비밀스럽다느니, 약속을 이행하기를 거부한다느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느니 하는 험담까지 늘어놓았다.

부시의 발언은 그 정치적 동기는 둘째치고 우선 일명 초대국의 대통령이라는 체모에 어울리지 않는 경솔한 언동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국가 수반이라는 사람이 면식도 없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에 대해 무턱대고 이러쿵 저러쿵 시비부터 하는 것 자체가 초보적인 외교 의례를 떠난 몰상식한 처사이다.

대통령의 권좌에 올라앉자마자 북조선 지도자에 대해 회의심을 품고 있다고 의심보따리를 풀어놓은 사람도 부시이고 진행중에 있던 조-미 대화를 모두 중단시켜 버린 것도 다름아닌 부시 행정부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며 그것도 오래전이 아닌 불과 몇달전의 일이다.

그러한 그가 자기의 처신에 대해서는 돌이켜 보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더러 의심이 많다거니 약속을 했으면 자기 몫을 해야 한다느니 하며 훈시하려 든 것은 그야말로 제코도 못 씻는 주제에 남을 넘겨다 보는 가소로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수반은 고사하고 일개 정치인의 체모마저 갖추지 못한 이러한 무분별한 처사를 두고 우리가 과연 미국이 귓맛좋은 소리를 한들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모처럼 눈석이를 맞이하였던 조-미 관계가 다시 얼어붙고 대화마저 파탄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부시와 그 행정부의 뿌리깊은 대조선 적대시 관념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조-미 사이에는 대화가 활발해지고 적대관계의 종식을 확약한 공동 코뮤니케와 테러를 반대하는 공동성명도 발표되었었다.

두 나라 지도자들 사이에는 특사방문과 친서들이 교환되고 최고위급 상봉이 일정에 오르는 정도로 이해와 신뢰가 조성되었었다.

더욱이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 일정에는 미국이 위협으로 보고 있는 우리의 미사일 문제를 서로의 이익에 맞게 해결하려는 우리의 중대결단에 대한 토의가 핵심사항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 미 행정부는 정권을 인계받기 바쁘게 이 모든 것을 다 뒤집어 엎었다.

세계제패를 위한 미사일방위체계의 수립을 우선시한 새 행정부로서는 우리의 미사일 문제가 조기 해결되는 것이 불편했으며 오히려 불량배 국가라는 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토록 계승성이라고는 꼬물만치도 없는 정권에 대해 신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이번 부시의 망언이 더욱더 실증해주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지난 6월에 내놓은 조-미 대화의 재개 제안 역시 본질에 있어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무장해제시키겠다는 강도적 요구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교전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상용무력을 축감하라는 것은 결국 대화 상대방의 우려를 해소해주기는 커녕 도저히 접수되지 못할 것이 뻔한 문제를 들고나와 대화 자체를 성립시키지 않으려는 올가미에 불과하다.

미 행정부는 말끝마다 미군을 남조선에 영구 주둔시키겠다고 호언하고 있으며 특히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구실로 남조선 주둔 미군 전력을 대폭 증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더러 일방적으로 상용무력을 철수시켜 평화의지를 보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기전에 무지와 파렴치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적대적인 대조선 정책은 역사적인 북남 최고위급 상봉과 6.15 북남 공동선언에 의하여 모처럼 마련되었던 북남 관계의 완화분위기까지 일거에 냉각시켜 버렸다.

미국은 남조선을 동맹국과 공조라는 쇠사슬로 얽어매어 북남관계를 저들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복종시켜 놓고 남조선으로 하여금 북과 남이 협의해야 할 민족내부 문제마저 먼저 미국의 승인을 받도록 복잡한 공정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북남 공동선언의 이행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미국의 반테러 전쟁을 빙자하여 새로운 무장장비들이 대량적으로 반입되고 있으며 전역에 비상경계령이 선포되는 등 전시에 가까운 살벌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에 편승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동참한 남조선의 위험한 정세에 따르는 신변안전상 문제로 다른 나라 국가 수반들의 서울방문이 취소되고 있으며 북남 사이에 계획되었던 흩어진 가족들의 고향방문마저 부득이하게 일시 연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부시 행정부에 의하여 조성되고 있는 정세가 바로 북남 사이에 합의된 사항들의 이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미 명백히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으며 미국과도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입장이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외교정책에서는 계승성과 일관성이 어느 정도 보존되는 것이 상식인데 부시 행정부에 와서 그렇게 안되는 것이 의문이다.

우리의 바지를 벗기기 위한 상용무력 축감문제와 같은 것이 자주정책을 실시하는 나라에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허황하기 그지없는 망상이다.

조-미 대화가 이미 두 나라 정부 사이에 합의된 기본합의문과 공동 코뮤니케를 이행하기 위한 실천적 문제들부터 논의하는 대화로 되어야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공정으로 될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신의있는 조-미 대화의 재개는 부시 행정부가 최소한 클린턴 행정부의 마지막 시기에 취했던 입장수준에 도달해야 논의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주체 90(2001)년 10월23일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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