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된 2002년 이래 줄곧 우라늄 농축 관련 의혹을 부인해왔다. 그러더니 13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미 “우라늄농축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그동안 국제사회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스스로 실토한 것이다.

우라늄 농축이 북핵문제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02년 10월 미국의 제임스 켈리(Kelly)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면서였다. 켈리 차관보는 자체적으로 입수한 증거를 토대로 북측에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을 제시했고,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은 “HEU 계획을 갖고 있는게 뭐가 나쁜가.

우리는 HEU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말 한마디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국제비확산체제(NPT)를 탈퇴하는 등 8년을 넘게 이어오던 ‘제네바 합의’는 휴지조각이 됐다. 이른바 2차 북핵위기의 시작이다.

북한은 이후 “농축우라늄 계획을 시인한 적이 없다. 미국 적대세력의 날조이자 농간”이라고 주장하면서 미북 간의 지루한 ‘진실 게임’이 시작됐다.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에서도 미국은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농축우라늄 관련 부품을 수입한 정보 등으로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부인으로 일관했다.

2005년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골자로 하는 9·19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우라늄농축은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으나, 지난해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를 놓고 다시 부각됐다. “우라늄 내용도 신고서에 포함시켜야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북한은 “없는 것을 어떻게 있다고 하냐”며 맞섰다.

결국 미·북은 “우라늄 농축 부분은 미·북 간 별도의 비공개 각서를 통해 해결한다”는 수석대표 간의 합의로 이 문제를 다시 덮었다. 미국은 추후 검증 단계에서 우라늄 농축 의혹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애초부터 북한에 철저하게 농락당한 꼴이 됐다. 정부 당국자는 14일 “북한은 앞에서는 6자회담장에 나와 챙길 것을 챙겨가고, 뒤에서는 우라늄농축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임민혁 기자 lmhco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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