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 장관급회담 등 3개 당국자회담을 금강산에서만 하자고 계속 고집하는 것은 자신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회담을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남과 북에서 회담을 교대로 해왔던 지금까지의 관행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그들이 그 이유로 엉뚱하게『남한은 불안하니 안전한 금강산에서 하자』고 내세우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테러공포 속에 우리 군경이 비상경계를 내리고 미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공군전력을 증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그것을 구실로 내세우는 것은 노리는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요구대로 금강산에서 회담이 열리면 여세를 몰아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고, 회담이 무산되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회담결렬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기 위한 것이다. 또 조건이 불리해도 남측이 쉽게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경험을 역이용한 측면도 있다. 남한의 속내를 훤히 읽고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금강산을 계속 고집하는 또다른 이유는 금강산 관광대가 미납금을 받아내기 위해 현대를 간접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당국간 회담을 계속 금강산에서 열게 되면 금강산의 중요도가 부각되고 그에 따라 현대가 그만큼 사업하기가 용이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냉난방 시설은 물론 부대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금강산에서 북한이 부득불 회담을 하겠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제는 북한의 이런 제의에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던 당국의 태도가 슬그머니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금강산에서의 당국자회담을 제의한 북한에 대해 남한측이 역제의했으나 북한이 받아 들이지 않겠다는 전통문을 보내오자, 정부 일각에서는 금강산회담에 응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어떻게든 진전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북측의 입장을 한번 들어볼 필요는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 장관급회담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로 인해 이산가족 문제는 실종되고 남북대화는 북한의 의도대로 흘러갈 판이다. 언제까지 이것이 반복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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