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중앙재판소가 8일 미국 여기자 2명에게 각각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 재판 절차를 마무리함으로써 이들 여기자 석방을 위한 북미간 교섭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보도'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재판소는 미국 기자 로라 링과 리승은(유나 리)에 대한 재판을 6월 4일부터 8일까지 사이에 진행하였다"며 "재판에서는 이미 기소된 조선민족적대죄, 비법국경출입죄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고 로라 링과 리승은(유나 리)에게 각각 12년의 로동교화형을 언도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미국은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모든 가능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며 "두 미국인 기자들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즉시 석방할 것"을 북한 당국에 촉구했다.

이에 앞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미 북한에 서한을 보내 여기자들의 월경을 대신 사과하며 석방을 호소했다고 미국 ABC방송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 방송 대담프로그램에 출연, 서한을 보낸 사실을 시인하고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지만, (북한에서) 누가 이런 (석방) 결정을 내리게 될지, 또 그런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 이유는 뭔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 초보적 교섭이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 5일엔 "우리는 (여기자 석방이라는) 인도적 임무에 엄격히 국한된 `특별대표'를 활용하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해결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말해 두 여기자 소속사 커런트TV의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 등의 특사 파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인 여기자 2명에게 선고한 12년형은 `조선민족 적대죄'가운데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 해당하는 `10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비법 국경출입죄'에 해당하는 형량을 합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형법상 '조선민족 적대죄'는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특히 "정상이 무거운 경우"엔 10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해지게 돼 있고, '비법국경출입죄'는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정상이 무거운 경우" 3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을 받도록 돼 있다.

북한 형법은 특히 한 사람이 여러 죄를 저지른 '병합범(남한의 경합범)'에 대해선 "매 범죄별로 형벌을 양정한 다음 제일 높이 행정한 조항의 형벌에 나머지 조항의 형벌을 절반정도 합한다"고 규정했다.

북한의 재판은 통상 2심으로 끝나며 1심에 불복할 경우 상소할 수 있지만 북한의 최고법원인 중앙재판소가 1심을 선고하면 단심으로 확정된다.

북한은 지난 4일 낮 12시58분께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당일 오후 3시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한 재판을 시작한다고 예고한 후 수일이 지나도록 재판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여러가지 추측을 낳았으나 중앙통신은 이번 재판이 북한에선 이례적으로 긴 기간인 4일부터 8일까지 열렸다고 설명했다.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는 지난 3월17일 북.중 접경 두만강 인근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도중 국경을 넘는 바람에 북한 군인들에게 붙잡혀 억류됐다.

북한은 3월말 두 여기자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 "불법입국과 적대행위 혐의가 확정됐다"고 공개한 데 이어 4월24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기소 방침을 밝히고 지난달 14일에는 6월4일 재판할 것이라고 재판 일정을 공개했다.

북한이 미국 여기자들에게 내린 12년형은 이란이 '취재행위를 빙자한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지난 1월 체포했던 이란계 미국인 여기자 록사나 사베리에게 4월 1심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가 5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에 비해 중형이다.

북한은 미국 여기자들에 대해 억류 약 석달만에 사법처리를 끝냈으며, 이란은 미국 여기자를 구금 약 넉달만에 석방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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