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끌어온 북한과 미국의 핵대결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는 양상이다.

’진정한 변화’를 기치로 내건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뒤 한동안 추이를 지켜보던 북한은 장거리 로켓발사에 이어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위기지수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에 맞서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돈줄을 죄고 북한의 미사일 수출 등을 통제하기 위한 ’화물검색’이 포함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과 제2의 ’BDA(방코델타아시아) 사태’를 연상하는 강력한 금융제재 카드를 꺼내들 태세다.

결국 북.미의 최고 수뇌부가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북핵 문제, 나아가 북한의 장래까지 큰 영향을 받게될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의 선택 강요하는 오바마 = 오바마 대통령은 6일 북한에 대해 매우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끊임없이 역내 안정을 해치고 그런 뒤에 우리가 그들을 보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길을 단순히 계속 걸어갈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불과 몇개월전 정권인수팀 시절 강조했던 ’단호하고도 직접적인’ 협상 기조를 재검토할 가능성마저 느껴진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7일 “흔히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공화당에 비해 대결보다는 협상에 주력한다는 인식이 외교가에 퍼져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위협요소와 군축.비확산 문제에 있어 민주당이 훨씬 강경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1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던 1994년 봄 민주당 클린턴 정부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른바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는데 있어 오히려 민주당이 ’단호하게’ 나선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외교적 접근을 선호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지난 수개월간의 북한의 행동은 매우 도발적”이라고 말한 것이나 “도발에 보상하는 정책을 계속할 의도가 없다”고 강조한 것은 북한이 계속 도발을 이어갈 경우 부시 행정부 당시 상정했던 그 어떤 카드보다 강경한 조치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게 외교가의 반응이다.

실제로 미국내에서는 북한의 최근 도발을 심각한 ’군사이슈’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로버트 조지프 전 미국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독재자를 다루는 방법’이라는 장문의 특별기고문을 통해 북한 정권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위험한 도박에 양보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한.미 양국도 5일 워싱턴에서 열린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외교적 협상 대상’에서 ’군사적 위협’으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유명환 외교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가진 회견에서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한미동맹 문제로 보고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고 한 말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미 양국의 이런 인식의 전환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론 정부 당국자들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며, 공격보다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아울러 북한이 ’현명한 선택’을 하고 협상장에 돌아오면 6자회담의 재가동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대응은 = 결국 공은 북한으로 넘어가 있는 양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서 느껴지듯 과감한 결단을 내려 핵폐기의 길을 택한다면 ’과감한 협상과 보상’이 주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과감한 제재’가 북한 앞에 놓이게 될 것이란 얘기다.

현재까지 드러난 북한의 움직임을 보면 강력한 대결을 피하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탄두 소형화, 그리고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개발 착수 선언 등이 북한의 후속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북한의 카드는 소형화된 핵탄두를 장착한 ICBM으로 미국 본토까지 사거리 내에 둘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높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 4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밝힌 UEP 본격 개발 착수 가능성은 북.미 핵대결 역사를 잘 아는 전문가들에게는 ’최후의 카드’로 여겨지고 있다.

북한은 당시 성명에서 “경수로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그 첫 공정으로서 핵연료를 자체로 생산보장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지체없이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수로 발전소에는 저농축 우라늄이 연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농축의 강도를 높여 고농축으로 나아가면 이는 곧 플루토늄 핵폭탄보다 훨씬 위협강도가 큰 고농축우라늄(HEU)를 기반으로 한 핵폭탄 개발로 연결된다.

북한은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정운으로의 권력 3대 세습을 위한 내외 상황정비를 위해 당분간 이런 도발 카드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정말로 ’끝장을 보자’고 나설 경우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불투명하다. 정운으로의 권력세습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지만 파국이 밀려올 경우 북한 내부의 동요도 걱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수뇌부의 고민은 이 단계에서 ’생존의 선택’을 해야한다는데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미국 여기자들을 상대로 한 재판에 대해 ’재판의 개시’만 외부로 알렸을 뿐 그 진행과정을 알리지 않는 북한의 모습에서 이런 고민의 일단이 엿보인다는 관측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변수는 역시 6자회담 의장국 중국이다. 지난 6년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진전을 담당해온 중국이 허무하게 회담의 종말을 눈뜨고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고위인사를 전격적으로 평양으로 보내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을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한동안 지속될 북한과 미국간 치열한 대결국면은 중국의 개입이나 북한과 미국, 또는 주변국에서 나올 예기치 않은 변수에 의해 반전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결의 결과가 어떻게 최종적으로 정리되든 그 여파는 향후 북핵 문제, 나아가 북한 정권의 미래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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