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면에서 본다면 연우무대의 연극 ‘김치국씨 환장하다’(장소현 원작, 최용훈 연출) 는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시대의 가장 큰 관심사와 닿아 있다. 그것은 분단된 한민족이 겪는 고통, 그리고 통일을 향한 꿈이다. ‘김치국씨 환장하다’는 그런 이야기를 황당하기 짝없는 코미디의 틀 속에 풀어낸다.

주인공 김치국(강신일)은 월남 실향민이다. 그는 평생 김밥장사를 해 왔다. 그런데 어느날 신문을 보던 김치국은 기절초풍할 기사를 대한다. ‘실향민 김치국씨가 평생 김밥 팔아 모은 18억원을 북한 돕기에 써달라고 기증했다’는 것. 김치국은 해명할 틈도 없이 방송마다 출연하고 삽시간에 국민적 영웅이 된다. 그러나 박수갈채는 잠시. 이번엔 수사기관이 그를 잡아다 “남파간첩 아니냐”고 족친다. 그야말로 ‘환장할‘ 상황에서 김치국이 깨닫는 사실이 있다. 어릴적 자신이 ‘일란성 쌍생아’로 태어났으며 자신을 꼭 닮은 쌍둥이 형 김평천이 있었는데 모든 게 그 형 때문 아닌가 한다. 마침내 그는 김평천을 찾아내 따지지만 김평천은 오히려 김치국에게 ‘네가 김평천 아니냐’고 따진다….

이 연극에서 가장 개성적인 부분은 분단으로 비비 꼬인 오늘의 풍경을 종횡무진 비유해대는 특유의 입담이다. 일란성 쌍생아로 태어난 김치국과 김평천이 남북으로 갈려 남남처럼 살고 있으면서 빚어지는 비비꼬인 상황들은 분단의 고통 그 자체에 대한 의미심장한 비유다. “붉은 소시지가 다른 재료를 물들여도 안되지만 싫다고 빼내면 김밥이 되나? 파란 시금치가 싫다고 빼내면 김밥이 되나? 각자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전체가 다시 어울려 새로운 맛을 만드는 게 김밥”이라는 김치국의 김밥통일론도 그럴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국씨 환장하다’는 역부족이다. 풍자극다운 후련한 카타르시스와 뼈있는 메시지가 유머속에 화학적으로 녹아있어야 하는데 그저 황당하기만 한 우스개들이 많다. “북의 지령받았느냐”는 수사관 물음에 김치국이 “지렁이는 못먹어”라고 답하는 식의 유머 감각이 관객을 움직일 수 있을까.

쌍둥이인 남의 김치국과 북의 김평천에게 다른 것이라곤 고환이 치우친 방향이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뿐이라는 설정은 이념 대립에 관한 기발한 비유이지만 연극속에선 절제를 잃고 너무나 여러차례 반복한다.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최근의 뉴스들을 수용하여 일부 대사들을 고치기는 했지만, ‘북풍’이 필요해 간첩 사건을 침소봉대 수사하는 대목처럼 부분 수정만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현실과의 부조화도 숙제다. 7월 23일까지 연우소극장. (02)762-0010

/김명환기자 m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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