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 고위관리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6자회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미국의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일 미국 워싱턴에서 공동 주최한 '오바마 행정부 시대의 한미관계 전망' 세미나에 참가한 이 관리는 그러나 "6자회담이 다시 열려도 과거에 했던 방식의 협상과 합의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후계문제가 최근 북한 도발의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서, "후계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북한이 곧 협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장거리 로켓발사 이후 계속된 북한의 도발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달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을 가장 고통스럽게(painful) 만드는 효과적인 제재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 이날 세미나에서 확인됐다.

게리 세이머 백악관 비확산·군축 조정관,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국장(조지타운대 교수) 등이 참석한 이날 세미나에서, 국방부 부(副)장관 출신으로 차기 국방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존 햄리 CSIS 회장은 "지금은 북한문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유엔제재와 금융제재 외에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추가금융제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각수 외교부 차관도 이날 "과거 대북협상 성공사례가 주로 압박을 통해 이뤄졌음을 고려해 어떤 압박이 효과적일지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그래야 북한과의 대화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했다.

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고려대 교수)은 "북한처럼 생존이 목표인 나라는 국제사회의 규범엔 아예 귀를 막고 살기 때문에 지나치게 상호성을 존중할 순 없다"면서, "대화와 제재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포럼이 열리기 전날 북한의 도발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백악관은 북한의 핵확산 가능성을 우려했고, 국무부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촉구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방문에 나섰다. 이번 방문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2005년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자금 동결을 주도했던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도 동행했다.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고려 중이라는 뜻이다.

요즘 뉴욕 월가에선 미 재무부가 북한과 거래하는 금융기관, 북한의 해외금융자산 실태를 조사해 독자적으로 금융제재를 할 수 있는 준비를 끝냈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북핵문제는 오바마 행정부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클린턴 국무부 장관이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발표할 때 북한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지났는데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주요 한반도 문제 담당자들의 인준이 완료되지 않아 일할 사람이 없어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로켓발사, 핵시설 재가동, 개성공단 폐쇄 위협, 2차 핵실험 등으로 숨 가쁘게 벼랑끝 전술을 밀어붙이자, 워싱턴에선 "조용히,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더는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미국이 근본적인 해결방식을 고민하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일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도발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북핵해결 방식의 마지노선은 "미국은 경제원조를 해주고 북한은 영변원자로를 잠시 동결시켰다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식의 협상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대안이 많지 않다. 미국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금융제재 카드만 해도 북한의 해외 돈거래가 워낙 비밀리에 이뤄지는 데다, BDA 자금 동결로 타격을 받은 이후 북한이 더 조심스럽게 거래를 하고 있어 실효성이 기대치에 못 미칠 것이라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중국은 북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지만, 중국의 협조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중국이 북한에 한번 강한 압력을 가해 협상테이블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을지, 그런 의사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워싱턴=강인선 기자 in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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