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초보다 강경해진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인식은 미·북 관계개선은 물론 한·미간의 공동인식 구축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의 대화의지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면서 「세계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보일 것」을 촉구했다.

『우리와의 협상은 물론 귀국(한국)정부와의 약속도 이행하기를 거부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국민에게 먹을 것을 보장하고 잘 대우하며 이웃과 협력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 나라를 현대적인 시대로 이끌어야 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발이 묶여있다고 오판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발언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것은 김정일이 구체적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미국으로서는 관계개선 노력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북한이 아프니가니스탄 사태로 엉뚱한 행동을 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부시 대통령이 휴전선에 대한 압박 제거, 다시말해 북한의 재래식 병력을 뒤로 물리는 것을 특기한 것은 미국이 재래식무기 문제 해결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인식과도 상당한 거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갑자기 연기하는 등 남북간 합의사항을 제멋대로 지키지 않은데 대해 김 대통령도 전과 달리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을 단순히 「북한내부의 의견 불일치」 등에 두고 있는 것은 부시의 근본적 불신과는 현저히 다른 것이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이 북한의 변화와 대외관계 개선을 위해 긍정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전제를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 시각이 보다 단호해진 것은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 「테러와 반테러」라는 새로운 대치선을 설치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이며, 이는 현정부의 낙관적 대북정책 기조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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