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

지난 주말 북한은 평북 철산군 동창리 새 미사일 기지에 기어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동시켰고, 앞서 5월 25일 아침에는 또 한 번의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노골적인 광기(狂氣)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 핵실험은 여러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해주었는데 무엇보다 첫째, 평양 정부가 ‘체제 다잡기’에 진력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식량지원 거부, 개성공단 압박 등 북한의 최근 행동들도 그 일환이라고 보면 쉽게 설명된다.

개성공단이 매년 3200만달러의 외화를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지라도 또는 미국의 식량지원이 아무리 갈급했던 것이라도, 북한 당국에는 그것들과 더불어 들어오는 ‘자본주의적 오염’이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둘째, 미국이 사용해온 ‘당근과 채찍’이라는 전통적인 대처방식으로는 북핵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지금까지도 북한은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 어떠한 경제적 혜택도 거부했고, 체제수호를 위해서라면 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국제 제재쯤은 늘 감수해왔다.

이번 핵실험은 서방식 합리주의에 근거한 ‘적절한 수준’의 보상이나 제재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결국 직접 평양 정부를 압박하는 조치들만이 유효하다는 결론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북한이 6자 회담을 국제 제재를 회피하거나 다음 수순을 위한 시간벌기 수단으로 활용해온 것은 한두번이 아니지만, 앞으로도 6자 회담으로는 북핵을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이제는 6자 회담과는 별도의 다자기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을 제외한 5개국에다 유럽연합·캐나다·호주 등을 가세시킨 ‘8자 기구’로 하여금 파격적인 대북보상이나 일사불란한 대북제재를 주도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때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핵 해결의 관건은 상당 부분 중국에 달렸다. 평양 정부에 직접 압박이 될 카드들을 가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외교단절이나 교류차단을 위협하면서 북한의 자세변화를 종용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주문에 대해 지금까지 중국은 “우리도 북한을 어찌할 수 없다”, “지나친 내정간섭을 할 수는 없다” 등의 틀에 박힌 이유를 내세우면서 손사래를 쳐왔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결국 실마리는 미국 쪽에서 풀어야 한다.

또 하나 분명해진 것은 한국도 북핵 위협을 이대로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현 여건에서 한국이 북한의 핵 행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방도는 많지 않다.

햇볕정책이 한창이었던 2006년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던 사실만 보더라도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길 것”이라는 기대는 무산된 것이며, 그렇다고 한국의 강경대응이 북한의 핵 행보를 주춤거리게 할 것도 아니다.

핵 보유 기정사실화를 향해 정신없이 잰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북한에 “하필이면 상(喪)을 당한 시기에”라는 한국인들의 하소연은 뜬금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이 북한이나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는 없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다자기구 추진, 핵우산 강화, 전작권 분리 재협상, 탄도미사일 본격 개발을 포함한 독자 억제력 함양, 비핵화공동선언 폐기, 핵잠재력 개발 등 중국이나 북한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카드들도 없지 않지만, 이 중에는 지금까지 한국이 구축해온 국제적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는 ‘극약처방’이 될 것도 있고, 동맹국과의 조율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도 있다.

한국이 국제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북한에 필요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어떻게 배합해야 할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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