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송환을 호소하기 위해 도쿄의 한 호텔에서 합류한 한·일 납북자가족 여성 3인. 왼쪽부터 최우영씨, 요코다 사키에씨, 이미일씨.


"그리운 가족 상봉까지 마라톤하듯 달릴터"


북한에 있는 가족을 찾는 한·일 여성 3인이 도쿄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14일 도쿄 중심가 히비야공회당에서 열린 ‘북한에 납치된 사람들을 구하자’는 국민대집회에 참석한 일본 납북자가족모임의 요코다 사키에씨,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李美一) 회장,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이다. 요코다 여사는 25년째 딸 메구미양을, 이미일 회장은 51년째 아버지 이성환씨를, 최우영 회장은 15년째 동진호 어로장이었던 아버지 최종석씨를 기다리고 있다.

메구미양은 77년 당시 13세의 여중생으로 배드민턴반에서 특별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행방불명됐다가 96년 귀순간첩 안명진씨의 증언으로 북한에 피랍돼 살아있음이 밝혀져 전 일본적 관심의 주인공이 됐다. "요코다 메구미들"이라고 하면 아예 일본의 납북자를 통칭하는 말이 된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10명의 납북자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 전역에는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26개의 지방단체가 이들의 송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메구미의 소식을 들을 때까지 19년 세월이 흘렀어요. 겨우 정신을 추스릴 때쯤 그 애가 북한에 살아있다고 들었어요. 다시 혼란이 찾아왔지만 이제 그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서 기쁘고 희망을 느낍니다."

요코다씨는 딸의 실종 후 첫소식을 듣기까지 어디에 신원불명의 여자 시체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일단 뛰어가기를 거듭했고, 단란했던 가족생활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지금은 쌍둥이 두 아들까지 가족 전체가 메구미를 찾기 위해 뛰고 있다.

"저는 일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요. 한국에는 수만명의 납북인사들이 있지만 그들을 찾는 목소리는 없었어요. 6·25납북자라고 하면 무슨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의심부터 해요. 일본에는 가족이 아니라도 도움을 주는 분들이 너무 많군요·"

이미일 회장은 올해 처음으로 6·25납북인사들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사단법인을 창립해 활동하고 있다. "못 생긴 얼굴" 대신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주고 떠난 아버지를 위해 평생을 뛰겠다고 말하는 이 회장은 전쟁 중이던 두 살 때 척추를 다친 장애인이다. 그에게 육체의 장애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잠식하지 못한다.

"재작년에 처음 메구미 어머니를 뵙고 친어머니 같았어요. 한국에서는 왜 하필이면 일본사람들과 연대하려고 하느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족을 찾는 것은 똑 같잖아요. 25년, 50년 가족을 기다리는 두 분을 보면 저 또한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찾고 기다리겠다는 생각입니다." 최우영 회장은 작년 2월부터 납북자가족 단체를 구성, 납북어부 등에 대한 국내 여론을 환기하는 데 앞장서 왔다.

세 사람은 "마라톤을 하듯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납북자송환을 위한 시민단체 도쿄 지부장을 맡고 있는 니시오카 츠토무(서강 력·동경기독교대학 조교수)씨는 "백 마디 논리적인 말보다 자민당사 앞에서 ‘내 딸이 지금 북한에 억류돼 있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하는가’라고 묻는 요코다 여사의 한 마디가 훨씬 호소력이 강합니다"고 말했다.

진실된 그리움이 그들이 거는 희망의 근거로 보였다.

/도쿄=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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