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2명이 29일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가 주최한 북한여성 인신매매 인권보고서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겪었던 형언하기 어려운 참혹한 고통을 눈물로 생생하게 증언해 참석자들을 울렸다. 무산광산 선전대 여배우 출신인 방미선 씨가 기자회견 중 강제수용소에서 맞은 허벅지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연합


"북한 여성들이 더이상 짐승처럼 팔려 다니지 않게 되길 소원합니다."

탈북여성 2명이 29일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가 주최한 북한여성 인신매매 인권보고서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겪었던 형언하기 어려운 참혹한 고통을 눈물로 생생하게 증언해 참석자들을 울렸다.

무산광산 선전대 여배우 출신인 방미선 씨는 남편이 2002년 굶어 죽고 나서 아들과 딸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여주겠다는 일념으로 탈북을 시도했으나 중국에서의 생활은 비참한 삶 그 자체였다고 털어놓았다.

방 씨는 "중국에 가면 밥도 많이 먹을 수 있고 북한에서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인신매매단이었다"면서 "중국에 가자마자 인신매매단에 팔려 처음에는 중국인 장애인과 강제결혼하고 나중에는 14살 연하 남자와 결혼까지 해야만 했다"고 울먹였다.

하지만 방 씨에게 그것이 고통의 끝이 아니었다.

방 씨는 결국 신분이 탈로나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붙잡혔고 강제로 북한에 송환돼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해야 했다.

방 씨는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 강제수용소에서 너무 매를 많이 맞아 지금은 제대로 걷지 못한다"면서 치마를 걷어올려 당시 맞은 허벅지에 움푹 팬 상처를 직접 보여줬다.

방 씨는 참혹했던 당시 상황이 생각이 나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참석자들 가운데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방 씨는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더는 다시 나오지 않아야 한다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여성이 더 이상 짐승처럼 팔려다니며 고통을 받지 않는 세상이 오도록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어 증언에 나선 김영애 씨는 탈북 후 중국에서 겪은 인신매매의 고통은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증언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편이 죽고 나서 어린 아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기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결국 인신매매단에 의해 중국인 장애인들에게 팔려다니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당시 중국에서 낳은 아이가 1명이 있지만 여건이 안돼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위는 이날 77명의 중국내 탈북여성자들과 인터뷰한 애용을 전하면서 "세계가 중국내에 있는 수천명의 탈북여성들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너무나 오랫동안 눈을 감아왔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피난민들"이라며 "국제사회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나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