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고급관리 15명이 중국 북경대에서 개혁개방 관련 법률연수를 받고있다는 사실은 20일자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에도 상세히 소개됐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북한 고위층들은 미 법률회사 이사에게 자본주의의 상법을 배우고 있다. 이들 북한 고급 관리들은 교실 내에서 전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배우려는 열의는 진지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무역부문 고위관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평양 소재 법원 판사, 김일성대학교 법과대학장 등으로 구성된 북한 ‘학생’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단기 집중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사람은 미 뉴욕시의 ‘폴, 와이스, 리프킨드, 워튼 앤드 개리슨’ 법률회사의 파트너(이사)이자 전 하버드대 법대 교수인 제롬 코언(69)씨.

북한 고위관리들에 대한 코언씨의 단기 자본주의 경제 교육은 98년부터 시작됐지만, 교실 내 외부인의 참석은 저널 기자에게 처음 허용됐다. 저널은 “코언씨가 합작사업 계약에 대해 강의하면서 ‘외국 파트너는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최대한의 지분을 얻으려 하는 이를 예상하라’고 말했지만, 학생들은 무표정에 반응도 없이 필기하는 이도 소수에 불과했고, 아무도 웃거나 질문하거나 속삭이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코언씨는 지난 60년 중국 법 제도를 전공, 하버드 법대 교수가 된 이래 미국·중국 간의 관계 정상화를 강력히 주장했었다. 이후 79년에는 중국 정부가 인정한 유일한 법률가로서 중국 내에서 외국과의 합작사업들을 추진했고, 중국·베트남과 같은 공산국가의 지도부에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법 제도에 대해 강의해왔다. 그는 “가끔 북한 관리들에게 ‘당신들은 활기와 결단력으로 이뤄진 중국의 경제 개혁과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베트남의 개혁 중 어느 쪽을 따를거냐’고 묻지만,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고 말했다.

코언씨는 그러나 “2주 전 강의 시작에 앞서 북한 관리들에게 알고 싶은 것을 써 달라고 요청했더니 무려 14쪽에 달하는 질문서를 팩스로 보내왔다”며, “그들이 많은 것을 배웠지만, 더 배우고자 갈망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코언씨는 이를 토대로 북한인들의 관심사를 가르쳐 주지만, ‘계약상의 모호성을 피하라’는 등의 요점은 분명히 전달한다는 것. 또 이들에게 ‘의향서(Letter of Intent)’가 무엇이고, 왜 사업 가능성 연구가 중요한지를 가르치고, 계약서 견본을 보여준다.

코언씨는 “북한 학생들이 시간 관념이 다소 느슨해, 한번은 커피 휴식시간이후 늦게 교실로 돌아온 학생들을 꾸짖자, ‘선생님이 명확성만 강조했지, 언제 정확히 교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있느냐’고 해 서로 시계를 정확히 맞추며 모두 한바탕 웃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그들이 내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저널은 현재 이들 북한 학생들이 북경대 기숙사에서 두 명씩 함께 살고 있으며, 코언씨는 북한 상부에서 모든 학생들을 세밀하게 검증하고, 학생들이 동거 학생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상부에 보고서를 제출하리라고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언씨의 판단은 북한이 개혁의 길로 나가고 있다는 것. 그는 “북한이 지난 78년 경제개혁을 처음 시작하던 중국을 닮았다”고 본다. 코언씨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처럼 한번에 최소 1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강의하기를 원한다. 저널은 그러나 “그가 북한 학생들에게 ‘강의를 비디오 녹화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런 급격한 조치에 대해 학생들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욕=이철민기자 chul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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