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선언 4항은 남북 간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 활성화를 규정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교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오지철(오지철)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장과 조한범(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윤강로(윤강로) 대한올림픽위원회 사무차장의 좌담을 통해 점검해 보았다

▲조한범=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으로 민간 중심의 교류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는 남북이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됐음을 의미한다. 사람의 의식과 생각, 일상생활 속의 차이들이 곧 사회문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북한체제의 구조적 제약은 있겠지만, 6·15선언 이후 상징적 사업을 중심으로 북한이 사회문화의 문을 열 것으로 기대한다.

▲오지철=북한의 민간단체란 것은 다 정부 당국이기 때문에 추진 주체가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바람직한 것은 남·북한이 이미 합의한 바 있는 사회문화공동위원회의 틀 속에서 향후 사회문화 등 제반 교류가 이뤄지는 것이나 가까운 시일 안에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문화재 문제라든가 정부 당국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정부기관이 나서고, 사안별로 구분해서 민간이 나서야 할 것이다. 사회·문화·예술교류는 문화의 속성상 체제의 벽을 허무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동안 문화·예술교류가 이산가족찾기의 부수적 사업으로 지난 85년, 95년 등에 이뤄지긴 했으나 6·15선언으로 이것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민족통합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윤강로=남북 스포츠 교류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그동안 물밑작업을 해왔고 남북 간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그동안은 정부 당국간 합의가 없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상태였다. 6·15선언문에 스포츠가 명문화한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남북교류 중에서 가시적이고 실질적으로 세계의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스포츠이다.

▲조=98년 대북포용정책이 시작되면서 남북 교류협력의 외연이 넓어졌다. 98년 한해 동안의 교류가 89년부터 97년까지의 것보다 많았다. 99년은 교류횟수는 98년보다 적었으나 통일농구대회, 민노총 평양 방문, 예술공연단 방북 등 질적으로는 크게 성장했다. 문제는 앞으로 어느 정도 확대될 것이며, 북한이 이에 응하는 자세가 과연 달라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은 경제적 대가를 받는 실리적 차원이나 대외선전 차원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때에만 민간교류에 응한 것이 사실이다. 6·15선언을 계기로 남북 간에 문화예술·스포츠분야에서 큰 이벤트가 나올 것이 예상되지만 대부분의 민간교류는 여전히 제한될 것으로 본다.

▲오=학술분야 교류는 거의 제3국에서 남북 학자들 간에 세미나 등을 통해 이뤄져 왔다. 남북을 오가며 한 것은 없지만 상당히 많이 이뤄지고 있다. 89년부터는 종교교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89년 이후 불교계 인사의 방북이 98건, 천주교 계통이 26건, 개신교 159건, 천도교 20건, 원불교 등 기타 종교가 34건이었다. 다른 분야보다 통행의 제한이 거의 없었던 주이유는 남한 종교계의 대북 지원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북한 종교인사의 남한 방문은 없었다.

▲조=사회·문화교류를 위한 북측의 남한 방문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늘어날 것이다. 문화예술·학술·종교·체육분야로 나누면 학술교류가 가장 빈도가 높았고 다음이 종교 및 문화·예술 분야였다. 문화·예술 분야 교류는 최근에 와서 빈번해지고 있다. 학술교류 중에는 통일분야가 많다.

▲오=종교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과연 북한에 진정한 의미의 종교가 있느냐는 질문이 없지 않다. 북한의 종교 자유는 제한적이나마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분단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을 통치하기 전에 이미 평안도 지방을 중심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도들이 뿌리를 내렸다. 평양 봉수교회 등을 중심으로 예배를 보고 있으며, 북한 교회에도 성서와 찬송가집이 비치돼 있다. 부활절 때 우리 측 종교인들이 북한에서 합동예배를 본 적도 있었다. 과거 많은 목회자를 배출한 평양신학원을 재개원하자는 논의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불교도 머리를 깎는 우리 같은 스님은 없어도 비록 소수이지만 사찰도 있는 것으로 안다.

▲윤=남북의 스포츠교류는 가깝게는 오는 9월 15일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때 남북의 동시입장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남·북한의 올림픽 종목별 경기력의 차이와 종목별 국제연맹의 규정상 올림픽에서 단일팀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개회식과 폐회식에는 상징적인 단일팀으로 동시입장이 가능할 것이다. 내년 4월의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이 탄생할 수 있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내려와 명실상부한 단일팀을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2002년 월드컵 대회의 분산개최도 이뤄질지 모른다. 남북이 가까워지는 데는 스포츠가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본다.

▲조=남북 간 교류·협력에는 아직 여러 장애가 많다. 제도적 측면에서 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 상충하는 면이 많은데 이것은 남북 교류를 권장하고자 하는 교류협력법과, 북한과의 접촉을 막으려는 국가보안법의 기본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 민노총 관계자들이 방북했을 때 방북 행적 문제 등으로 조사를 받아야 했고, 그 이전에는 같은 문제로 사법처리된 예도 있다. 교류 신청을 통일부가 보류시켜 성사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 남북 교류가 정치를 떠나서 이뤄지기는 힘들지만 남북 정상이 앞으로 잘 해보겠다고 선언해놓았으니 상징적 차원의 교류는 급증할 것이다.

▲오=학술분야의 직접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고구려사(사)나 발해사, 문화재 공동 연구, 언어 이질성 극복 등 문제는 서로 도움도 되고 관심도 있는 내용일 것이다. 출판 분야에서도 당분간은 북한 서적의 국내 출판이 교류의 주류가 되긴 하겠지만 북한에서도 우리 책을 출판하거나, 아니면 자연도감총서처럼 북측에 없는 것을 보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민속, 음식, 미술사, 문학사 등과, 특히 북한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전통음악 분야, 그 중에서도 개량 전통악기 연주, 세미나 등 분야에서의 교류가 용이할 것이다. 북측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부터 인내를 갖고 하나씩 이뤄나가면 신뢰 회복에 크게 유익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조=지금까지는 교류관계법이 소수의 선별적인 교류에 그 기준이 맞춰져 있었으나 앞으로는 금강산 관광처럼 일반인들의 방북이 가능한 차원으로 고쳐질 것으로 본다. 인적 교류가 점차 증가하면 일반 주민의 무제한적 방북까지 염두에 둔 법 체계로 확대돼야 한다.

▲오=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 ‘불가사리’가 국내에서 상영된다. 북한 영화의 남한 극장 첫 개봉이다. 실정법을 위반하거나 국민 정서에 부합되지 않는 이념성 짙은 영화를 제외하면 다른 영화도 국내 상영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북측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주고 영화를 들여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을 수 있지만 민간 차원에서 하는 일이므로 시장성 없이 터무니없는 돈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윤=북한과 체육분야에서 교류·협력을 추진할 때 단일팀의 비용을 우리가 다 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의 체육분야 협력은 일방적 지원체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스포츠는 남·북한이 협력만 잘 하면 스포츠 마케팅을 위해 전 세계가 달려들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비용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축구공, 농구공, 경기용 자전거 등 스포츠산업을 남북이 함께 하면 세계적인 스포츠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다.

▲조=남북협력기금이 4000억원 정도 남아 있어 체육교류에 사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경제협력 분야에 건당 수백억원씩 쓰였다. 순수하게 민간 차원의 교류 지원은 남북사진학회에 3000만원을 지원한 게 전부다. 앞으로는 이 기금을 유연하게 사회문화분야에도 써야 한다. 북한의 문화예술은 그 자체가 정치인데 여기에 우리 국민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 문제가 있으므로, 문화에도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분야에서도 상호주의를 엄격히 적용하면 교류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은 문화분야에서도 경제적인 실리 추구와 대외이미지 개선 및 통일전선전술을 기반으로 남측과 접촉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인내심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윤=체육계는 북한 주민을 접촉할 때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제약을 완화해 주기를 희망한다. 국제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들의 교류가 많은데 건건이 보고를 해야 하는 불편이 적지 않다.

▲조=한 번 보고하면 1년 동안 지속된다든지 하는 법의 손질이 필요하고, 나아가 소수의 제한된 접촉에서 벗어나 대규모 인적접촉이 가능한 쪽으로 법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오=북한의 이념성·정치성 때문에 학술·문화교류에도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으나 우리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연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북한은 추진 주체나 방식 등이 정리돼 있는데 비해 우리는 들뜬 기분에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있다.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민간 차원의 교류과열은 자제되어야 한다. 북한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부터, 상징적이고 큼직한 프로젝트를 개발해, 1년에 한두 차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지난번 평양교예단 초청 공연에 60억원을 지급한 것 등 국내 단체나 기업들의 지나친 경쟁으로 너무 많은 돈을 준다는 비판도 있다. 앞으로는 사회문화 협력사업도 시장성 중심으로 갈 것으로 본다.

▲오=평양교예단, 소년예술단 등은 원래 흥행성도 있고 호기심과 남북정상회담까지 겹쳐 흥행에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흥행성 있는 공연이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학술, 민속, 전통음악, 미술, 문화재 등 분야는 흥행성을 기대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므로, 교류 협력과정에서 북측의 경제적인 요구가 더 많아질 수 있는데, 남북 당국 간 논의에서 이 부분을 잘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홍석준기자 udo@chosun.com

김덕한기자 ducky@chosun.com

/사진=이덕훈기자 dh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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