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의 반테러리즘 전쟁을 전후한 시점에서 사람들은 참으로 전례없이 희한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사회민주당 출신 독일총리 슈뢰더가 『이것(테러행위)은 미국만에 대한 것이 아닌 전체 문명세계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미국을 화끈하게 편들고 나선 점이다. 걸프전 때만 해도 독일의 사민당 좌파는 유엔 깃발아래 독일군이 전투병력으로서는 물론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한사코 반대했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푸틴과 장쩌민이었다. 그 둘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대한 자살테러 공격이 있기 불과 두 달 전에만 해도 MD 추진에 대해 미국 패권주의의 상징이라며 확고한 대처를 별렀던 터였다. 그런데 그런 푸틴이 이번엔 『테러공격은 미국을 넘어 전체인류에 대한 침공…』이라고 규정했고, 장쩌민 역시 부시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해 폭넓은 지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 둘의 경우보다 몇배나 더 진기하고 희한했던 것이 바로 북한의『모든 형태의 테러리즘과 이를 지원하는 행위를 반대…』라고 한, 참으로 「오래 살고 볼」발언이었다. 『미제국주의의 심장부에 꽂힌 아랍인민들의 정의의 비수…』 『CIA의 자작극…』 운운했어야 딱 맞았을 터인데, 뭐 『테러근절책을 마련하자…』?
도대체 왜 이런 흥미진진한 「부시 맞수들의 지지찬성」 줄서기가 벌어지는 것일까?

물론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가 너무 처참해서 푸틴, 장쩌민, 북한이라 한들 뭐라고 딴소리를 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현실적인 중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미국주도 세계화에 그토록 반발하던 푸틴, 장쩌민까지도 막상 『세계화냐, 아니면 성전을 부르짖는 테러분파들의 반세계화냐?』의 양자택일이 코앞에 들이밀어졌을 때는 도리없이 「세계화」쪽에 발맞춰줄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지구적 규모의 「하나의 시장」에 줄을 대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불가피한 현실, 한 나라가 문 걸어잠그고 자급자족할 수는 없게 된 상호의존성, IT혁명이 불러온 온갖 장벽들의 허물어짐, 그리고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가 전세계인들의 허파를 동시에 병들게 만드는 생태학적 연결고리가 말해주듯, 이제는 제아무리 그 어떤 나라라도 『우리끼리 우리 식대로…』하는 독불장군식 민족주의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게 된 21세기의 지구사회다.

그래서 그런 대세에 역행해 외톨이로 왕따당하는 것은 썩 이롭지 않다는 계산에서 북한 역시 『나도…』하고 끼어든 것이겠으며, 그 점에서 북한의 그런 조용함(?)은 국제적 세불리(세불리)에 따른 몸낮춤이지 누구말대로 꼭 「햇볕정책이 가져온 성과」는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작금의 반테러리즘 국제질서가 뜨기 전까지의 한국 집권측의 동향은 동맹관계(세계화)보다 「DJ·김정일 내부자거래(민족주의)」에 더 심취하는 것같은 모습을 분명히 보여왔다. 물론 거기엔 필요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심각한 정체성 혼선과 국익손실을 초래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예컨대 부시가 김 대통령에 대해 『나는 김정일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집권당 의원들은 일제히 들고일어나 『부시의 대북 검증론은 한민족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에 더 적극적인 논리다』, 『(야당총재는) 미국 냉전주의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당장 그만두고…』라며 길길이 뛰었지만, 그것은 올바른 「남북」을 위해서도, 결코 적절한 인식도, 바람직한 민족주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부적절한 설정은 세계적인 신국제질서의 출현 한방으로 일순간에 빛바래고 말았다. 이런 점을 성찰해서라도 집권측은 스스로 푸틴이나 장쩌민보다도 더 세고 진한 「원리주의자」임을 자처하지 않는 한 『동맹관계보다 민족이 우선한다』고 했던 과거 한때의 착시를 되풀이해선 안될 것이다. (논설주간)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