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기자는 만주(滿洲) 벌판에서 떨고 있었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도로를 달리고 있었을 팔자(八字)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延吉)~도문(圖們) 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 안에서 중국 공안이 나타날까 두리번대는 신세로 바뀐 것은 중국에서 날아든 뉴스 때문이었다.

중국행(行)은 최근 탈북자가 줄었다는 정보가 계기가 됐다. 북한이 국경뿐 아니라 개성공단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장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로켓을 함북 무수단리 발사대에 장착했다는 뉴스가 26일 전해지기도 했다. 기자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고 현장 가까이에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출발 하루 전 상황이 변했다. 도문의 두만강 조·중(朝中) 국경에서 탈북자를 취재하던 미국 케이블 '커런트(current) TV'의 기자 2명이 북한군에게 붙잡혀 간 것이다. 한국계 유나 리, 중국계 로라 링에게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지난 17일이다.

기자들과 함께 있었던 PD와 조선족 가이드는 북한을 탈출했다. PD는 중국에서 조사받고 25일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조선족 가이드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회장인 커런트 TV 취재팀은 음란 화상 채팅을 강요당하는 탈북 여성을 취재하고 있었다.

연길에 도착하던 날 영상 10도를 웃돌던 기온은 다음 날 뚝 떨어졌다. 영하 10도라는데 체감기온은 더 낮았다. 연길~도문 도로에는 연무(煙霧)마저 자욱했다. 가시거리가 채 50m도 되지 않았다. 승용차로 30분쯤 달려 조·중 국경에 도착했을 때 강풍까지 불었다.



◇ 중국 쪽에서 바라본 북한의 무산시(茂山市)는 한낮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왼쪽으로 오면 바로 중국 땅이다(사진 위). 미국 여기자 2명이 끌려간 북한 지역 인근의 철도 역에는‘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같은 구호가 적혀 있다(사진 아래).

평소 관광객이 북적이던 도문교(圖們橋)에는 인적이 없었다. 중국 경비병은 이방인을 자꾸 흘끔거렸다. 평소 다리 건너로 또렷하게 보이던 북한 쪽 남양시도 흐릿한 윤곽만 드러낼 뿐이었다. 몇 차례 셔터를 누른 뒤 기자는 다시 승용차를 탔다. 이번에 갈 곳은 도문 우측 방향이다.

10분 거리에 '마패(馬牌)'라는 곳이 나왔다. 조선족 100여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곳곳에 서 있는 간판은 모두 한글이다. 주로 음식점이 있다는 것과 잘하는 요리가 뭔지를 알리는 광고였다. 겉보기에 조용해 보이는 이곳에서 미국 기자 2명이 북한으로 끌려가기 전 머물렀다.




◆2명의 여기자, 붙잡혀 간 곳은 어디?

사건 발생 직후 국내 언론에 미국 여기자들의 행방에 대한 속보가 잇따랐다. 사건이 일어난 곳과 관련한 첫 보도는 '여기자들이 잡혀간 곳은 도문의 월청(月晴) 접경지로, 두만강 폭이 좁은 곳은 3~4m도 안 되는 개울에 가깝다'(동아일보 21일자)는 것이었다.

이 보도에는 현지 소식통의 이야기도 있었다. '두 기자가 탈북자가 넘어오는 장면을 찍지 못하자 직접 탈북자처럼 북한 쪽에서 넘어오는 것을 촬영하기 위해 월경(越境)했다'는 것이다. 24일에는 한국 대북 정보망을 인용한 보도가 있었다.

'여기자들은 이들을 발견한 이 일대에 주둔 중인 27경비여단 소속 북한군 초병의 "꼼짝 말라"는 수하(誰何)에 응대하지 못해 체포됐으며 현재 평양 근교의 보위사령부로 옮겨져 조사를 받고 있다'(중앙일보)는 것이다. 북한은 이들에게 간첩혐의를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는 현지에서 정보원들과 접촉했다. 그들은 신분이 드러날 것을 극도로 꺼렸다.

―미국 기자 2명이 북한군 병사에게 붙잡힌 곳이 어디인가.

"두 여기자가 붙잡힌 곳은 마패(馬牌)라는 조선족 거주지에서 도문 쪽으로 가다 첫 번째 북한 마을이 나타나는 곳이라는 정보가 있다."

―그런 정보가 어디서 나오는가.

"중국측에서 흘러나온다. 현재 연길에는 시(市) 정보기관뿐 아니라 중앙 정보기관에서도 요원이 파견돼 있다고 한다."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자세한 것은 묻지 마라."

―마패에서 도문 쪽으로 가다 첫 번째 마을이 정확히 어디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곳이다. 마패에서 도문 쪽으로 승용차로 되돌아가면 3분 거리다."

―저곳의 두만강 폭이 어느 정도로 보이나.

"40m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주변은 얼어붙었지만 중심부는 물이 흐르고 있지 않나.

"그렇다. 깊이는 어른 무릎 정도 될 것이다."

―북한 쪽 마을 앞을 지나는 철도는 무엇인가.

"무산선(茂山線)이다."

북한 쪽 마을 역사(驛舍)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구호가 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다. 북한 마을 주변에는 짚으로 덮어놓은 것 같은 모습들이 보였다. 기자는 주변을 경계하며 카메라를 꺼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과 중국측의 경비가 동시에 삼엄해질 때가 있다. 대북(對北) 변수가 생기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에는 가장 효율적인 경량(輕量)장비가 필요하다. 기자는 위성전화기 2대와 1420만 화소 DSLR 카메라, 24~70㎜ 렌즈와 일명 '김밥'이라 불리는 70~210㎜ 렌즈를 휴대했다.



◇ 중국땅에서 본 북한 무산市 중국인들이 북한의 무산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제 발로 갔나, 붙잡혀갔나?

―저쪽에 보이는 짚으로 덮은 것 같은 구덩이들은 뭔가.

"북한 경비병들의 위장 초소다."

―렌즈로 보면 북한 주민이 서성이는 모습이 보이고 트럭도 지나간다.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이런 곳을 기자들이 건너가는 게 가능한가?

"작심했다면 건너가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은 지형이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한국측 언론은 '기자들이 제 발로 두만강을 건넜다가 북한군에 붙잡혔다'고 보도한다.

"현장에서 보면 과연 그들이 촬영 욕심만으로 두만강을 건넜을지 의문이 생기지 않는가? 자기들 모습을 찍어 탈북자가 건너오는 장면처럼 보이게 했다고? 문 부장은 저 강폭을 보고 건너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두만강 일대에 강폭이 3~4m밖에 안 되는 곳이 있나? 언론 보도에는 그런 곳이 있다는데.

"두만강이 무슨 개울인가? 아무리 옛날보다 좁아졌다지만 직접 가보면 최소 10m는 넘는다. 멀리서 보는 것과 막상 강 주변으로 내려서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최소 10m 이상은 된다. 수심도 들쭉날쭉하다."

―한국에서는 미국 기자들이 제 발로 북한 쪽으로 걸어갔다고 하는데.

"우리가 아는 내용과는 정반대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곳에서는 '북한군이 사전에 미국 기자들의 취재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게 가능한가.

"기자들을 북한측과 관련이 있는 조선족 가이드가 유인했다는 극단적인 추정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조선족 가이드의 신원에 대해 아는 게 있는가.

"30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정확히 밝힐 수는 없다."

―그가 사는 곳도 아는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저곳이다."

―집 대문이 닫혀 있지 않나.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중국측 조사를 받은 뒤 구치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를 의심하는 이유가 있나.

"조선족 가이드에게는 '사연'이 있다고 한다. 그는 작년 5월 북한 측에 납치됐다고 한다. 그러고는 3개월 후 돌아왔다. 조선족 사이에서는 그를 둘러싸고 여러 정보가 난무하고 있다."

―미국 기자들이 어떻게 처리될 것 같은가.

"연길에서는 2명의 기자 처리와 관련, 중국계 로라 링은 조기 석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 한국계 유나 리는?

"스파이 혐의가 적용될 것이다. 그러다 막판에 북한이 '스파이 혐의'를 쓴 유나 리를 전격 석방하면서 대미(對美) 관계에 활용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 다른 유력 정보원에 따르면 미국 기자 2명 체포에는 북한 국경수비대가 아닌 보위부 요원들이 직접 동원됐으며 이들은 사전에 여 기자들의 접근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앞서 접한 정보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첩보전이 강화되자 거액을 풀어 일부 조선족을 포섭했다고 한다. 일부 고관(高官)까지 매수 대상에 포함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중국은 일체의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

기자는 귀국 후 대북 정보 관계자를 통해 이런 이야기의 진위(眞僞)를 따져봤다. 그는 "조·중 국경까지 가이드가 안내할 수는 있어도 강변에 붙게 하거나 북한에 건너가게 한다는 것은 가이드의 허락이나 부추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연길에서 흘러다니는 분석의 신빙성은 어느 정도인가.

"나도 중국 쪽을 통해 확인했다. 가이드에게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도 기자들이 월경을 강행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이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북한에 건너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상식적으로 알 것이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는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납치당한 강건, 진경숙씨도 강변까지 유인한 뒤 순식간에 북한 보위부가 덮쳐 잡아간 것이다.'

―이번 사건을 우발로 보나.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 보위부는 연길에 오는 탈북자나 인권운동가, 기자의 행적을 알기 위해 수만달러를 들여 공작을 편다고 한다. 유명한 탈북자들은 요즘 연길 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연길은 이미 북한의 특무(特務·스파이) 세상

한 해 3만명가량이 넘어오던 탈북자 수는 최근 크게 줄었다. 탈북자 수 감소는 한국과 미국의 쌀 원조 때문이라고 한다. 양국뿐 아니라 중국도 꾸준하게 북한에 쌀을 원조하고 있다. 요즘도 중국 단동~북한 신의주 간 철교에는 식량을 실은 50t컨테이너가 한번에 50량씩 건너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즈음부터 북한측의 국경 경비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식량난이 심할 때 일부 북한 경비병들은 도강비(渡江費) 명목으로 탈북자 1인당 중국 돈 100위안(한화 2만5000원)을 오갈 때마다 징수했다. 최근에는 그 비용이 2000위안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 인적 뜸해진 도문 국경 평소에는 관광객이 붐비는 북한과 중국 간 도문 국경에는 미국 기자들이 북한에 붙잡혀간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인적이 뜸해졌다.


―탈북자가 줄어든 게 언제부터인가.

"2003년을 고비로 줄기 시작했다."

―한미 양국과 중국의 쌀 원조나 도강비 외에 영향을 미친 게 또 있나.

"북한 특무들의 활동이다."

―특무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나?

"올 초 연길에서 탈북자를 돕던 관계자들이 대거 연행돼 조사받았다. 일부는 며칠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태는 북한과 연계된 조선족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선족 사회가 내부적으로 친북(親北) 친한(親韓) 양쪽으로 갈리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게 볼 수 있다."

―북한 특무의 활동이 언제부터 시작됐나.

"북한 특무의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한국에서 적발된 간첩 사건이다."

―아직까지 일각에서는 그가 간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그의 아버지와 계부(繼父)는 모두 북한 보위부 장교였다. 그는 탈북자를 가장해 연길로 온 뒤 북한을 오가며 정보를 전했고 나중에는 중국인으로 신분을 위장해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했다."

―신출귀몰한데….

"조선족들도 그의 행적을 들으면 모두 놀란다."

1999년 연길에서 '예림'이라는 불고기 집을 운영하며 탈북자들을 돕던 미국 시민권자 김동식 목사 납북도 북한 특무의 작품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연길 인근 남평(南坪)을 통해 북으로 끌려간 김 목사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오래전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 특무들의 활동이 강화된 직후 도문 쪽에는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수용소가 생기기도 했다. 많을 때 수백명이 넘던 수용소는 지난해 10월 8일 마지막 탈북자 3명이 북으로 송환된 이후 텅 비어 있다고 한다. 탈북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새로운 탈북 루트를 가다

다음 날에도 기자는 떨고 있었다. 이번에는 깊은 산 속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게 만드는 상황으로 변했다. 눈구덩이에 빠진 승용차 바퀴가 자꾸 겉돌더니 절벽 쪽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이었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육중한 승용차를 밀어올렸다.



◇ 트럭 탄 北주민들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인적 드문 산속에서 낑낑대며 차를 밀고 있는 모습이 연출된 곳은 화룡(和龍) 부근 소골령(小骨嶺) 중턱이었다. 소골령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소(牛)도 골골댄다는 말이 돌만큼 험준하다. 정작 골골댄 것은 사람과 200마력짜리 차(車)였다. 아래는 1000m가 넘는 낭떠러지였다.

―탈북자들이 이런 곳을 넘어오나?

"이 루트는 과거 탈북자들이 많이 나타난 곳이다."

―어린이들이 넘기에는 무리일 것 같은데….

"이곳에서 숨진 북한 어린이들이 부지기수다. 변변한 신발조차 신지 않은 어린이들이 아무 정보 없이 이곳을 헤매다 굶주림에 지쳐 쓰려져 동사(凍死)하는 것이다."

―10년 전 이곳에 출장 온 적이 있다. 그때는 이 코스가 아니었는데.

"어디 어디를 가봤나."

―당시 두만강과 압록강을 종단했다. 두만강은 연길~용정(龍井)~화룡에서 혼춘(琿春)~도문(圖們)~개산둔(開山屯)~삼합(三合)을 도는 코스였다. 이후 심양(瀋陽)으로 가 압록강 신의주 맞은 편 단동(丹東)을 취재한 뒤 심양으로 되돌아왔다.

"그 지역들은 이미 감시가 심해졌다. 간혹 넘어오는 북한 주민들이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거의 없다."

―감시가 왜 심해졌나.

"2008년 상영된 영화 '크로싱'을 아는가?"

―유명한 영화 아닌가.

"그 영화는 2002년 3월 15일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을 통해 25명이 탈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 여성이 북한 회령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왔다. 이 영화가 주목을 받은 직후 회령~중국 삼합 루트에는 1㎞당 1개소대의 북한경비병이 배치됐다."

―그럼 지금 가는 곳은 노출되지 않았나.

"보다시피 두만강 폭이 10~20m 내외로 좁다. 바로 인근에는 조선족들이 다수 거주하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만 빠져나오면 험준한 산악지역이 화룡까지 계속돼 중국 측 감시의 눈길도 피할 수 있다."

―물이 다른 곳보다 깨끗해 보인다.

"임연수도 살고 야리도 산다. 여름이면 천렵도 하는 곳이다. 가끔 우리 쪽에서 먼저 넘어가 먹을 것을 주고 오기도 한다."

―북한 주민들이 모두 탈북자는 아니지 않은가.

"탈북자는 정확히 세 부류로 나뉜다. 식량을 얻어 돌아가는 사람, 남한으로 가려는 사람,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중국에서 살려는 사람이다."

―무슨 이유로 중국에서 살려고 하나.

"남에도 북에도 갈 수 없다면 무슨 죄를 저질렀겠지."

―식량은 보통 얼마씩 얻어가나.

"성인은 50㎏, 아이들도 20㎏씩의 식량을 얻어가곤 한다."

―중국 경비병들은 그걸 놔두나.

"중국 사람들도 '불쌍한 북한 주민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괜찮지 않으냐'고 하면 대개 이해하는 편이다."

―쌀이나 의류는 어떻게 모으나.

"평소 조선족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놓는다. 그래도 우리 민족이 인정은 있지 않은가."

―북한의 식량 사정이 좋아졌다는 데 사실인가.


◇ 밭이 된 산 북한은 식량난을 이기기 위해 산꼭대기까지 밭을 일궜다.


"저곳을 보라. 산꼭대기까지 화전(火田)이 일궈져 있지 않은가. 화전을 저렇게 높은 산에까지 개간한 게 북한의 실정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 식량난이 완화된 것도 사실이다."

이곳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를 달리면 북한 무산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무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인구 7만이 산다는 무산시는 한낮에도 주민 모습이 드물었다. 중국측이 인수해 개발하고 있다는 철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된 물은 두만강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연길에서 북한을 오가는 조선족들은 "작년 10월부터 북한 전역에서 전시(戰時)를 방불케 하는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작년에만 6차례 북한을 방문한 조선족 인사는 "작년 9월까지는 평화로운 상태였지만 10월부터 모든 군인이 총을 휴대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11월에 청진에 갔을 때는 집집마다 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 천을 씌웠다"며 "전 인민이 군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조선족 인사도 "작년 겨울부터 군부대 주변과 거리에 나무를 꽂은 위장막(僞裝幕)이 등장했다"고 했다./글·사진=문갑식 기자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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