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개선 방안을 고민하는 ‘제9회 북한 인권·난민 국제회의’가 20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렸다. 스티븐 스미스(Smith) 호주 외교부 장관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굶주림과 고문 등 비참한 상황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제성호 한국 인권대사는 “남반구에 있는 호주에서 이번 회의가 열린 것은 북한 인권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있어 국제적 지평을 넓혔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번 회의는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인권호주위원회가 공동 주최했고 호주 국제문제연구소와 미국 국립민주주의 기금, 조선일보 등이 후원했다. 이날 300여명의 참석자들은 조선일보가 탈북 난민들의 비극을 담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를 관람했다.

◆“해외 원조 식량은 군대로”

이날 회의에선 국제사회가 그동안 북한에 제공한 인도적 지원이 북한 주민, 특히 아동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요안나 호사냑(Hosaniak) 북한인권시민연합 국제협력팀장이 2001~2008년 북한을 떠난 탈북자 50명(아동·청소년 40명, 성인 10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남한이나 국제사회가 지원한 쌀을 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대한민국’ ‘유엔’ ‘적십자’ 마크가 찍혀 있는 곡물 자루가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탈북자들은 “남한이 원조한 식량은 군대에 우선 제공되며 나머지는 시장에서 (돈이 있는) 군대나 당원들에게 팔린다”며 “일반 국민에게는 적은 양만 시장 가격보다 조금 낮은 가격으로 분배된다”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255만의 쌀과 20만의 옥수수가 북한으로 건너갔지만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탈북자들)는 것이다.

특히 유엔이 아동과 임산부들을 위해 지원한 육류·생선 통조림의 경우, 2001~2007년 동안 이를 직접 받았다거나 본 적이 있다는 증언자는 50명 중 한 명도 없었다. 독일과 스위스가 준 냉동 쇠고기는 50명 중 2명이 실제 먹어봤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를 먹은 사람도 “국제 원조 요원의 인터뷰에 대비해 사전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 아동들이 ‘유엔 과자’라고 부르는 고(高)영양 비스킷이나 영양빵, 콩우유 등도 평양 같은 특별 구역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호사냑 팀장은 “북한은 9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 비자금 조성을 위해 ‘백도라지 농장’이란 이름으로 아편 사업을 본격화했다”며 “어른에 비해 아이들은 아편을 훔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양귀비 진액 수집에 동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참혹한 수용소 상황

지금 북한에는 확인된 정치범 수용소만 6곳에 10만여 명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0곳 이상에 30만여 명은 갇혀 있을 것”(탈북자 김명도)이란 증언도 있다. 주로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불만을 표시하다가 잡혀온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다.

탈북자 김용씨는 “14호 관리소(평남 개천군)에선 2년 동안 15건의 즉결처분을 목격했고, 18호 관리소(평남 북창군)로 옮겨와선 3년 동안 30건 정도의 공개처형을 봤다”고 했다.

90년대 들어 14호 관리소에선 공개처형보다 비밀처형을 많이 했는데 그 이유는 “너무 자주 공개처형을 해서 처벌 효과보다는 수감자들을 자극해 1990년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기 때문”(김용)이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범 수용소에선 “계급의 원수는 3대에 걸쳐 씨를 없애야 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가 철저하게 지켜져 ‘영아(嬰兒) 살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증언이 많았다. 가족 단위 수용소를 제외하고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총살형’에 해당하는 중죄(重罪)라고 한다.

허만호 경북대 교수는 “서방 인권단체들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일이 지난 수십년간 ‘대량 학살’과 ‘인도에 반하는 죄’를 저지른 혐의로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유엔 차원에서 나선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고문으로 몸무게가 78㎏38㎏으로”

북한인권시민연합이 1993~2009년까지 16년간 북한 내 고문(拷問) 실태를 분석한 결과, 다소 개선된 측면이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1999년 북한인권시민연합과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제1회 북한 인권·난민 국제회의’를 열었을 때만 해도 북한 당국은 “북남관계를 악화시키고 민족 화해를 저해하는 범죄 행위”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당시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9개월간 지하 감방에서 구타를 당해 치아가 모두 부러졌으며 78㎏이던 체중이 38㎏으로 줄었다”(정광일씨)는 등의 증언이 나왔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이 먹혀들었는지 북한도 2000년 이후 단순 탈북자에 대한 처벌은 완화시켰다는 분석이다. 2004년과 2005년에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손질해 강압에 의한 진술의 증거채택 금지 등 법조문상 인권 개선에 노력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북한은 아직 고문방지협약(CAT)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멜버른=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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