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남북협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협상이 곧 시작될 예정이다. 이번 남북협상은 1972년 7·4공동선언, 1984년 수해물자 접수, 1990년 고위급회담에 이은 ‘제4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남북 간에 합의가 이뤄졌을 때 우리들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또 합의사항 실천을 위한 후속회담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서 실망이 컸다. 이번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후속협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여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겠다. 이를 위해 북한의 협상 전략과 전술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최근 북한의 대남·대외 협상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성을 보면 가장 흥미로운 점이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협상에 나서는 경우 커다란 정책 변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김정일이 기존의 통미봉남(통미봉남)정책을 ‘연남(연남)정책’으로 바꾸었고, 1994년 6월 김일성이 카터와 만나 핵 문제를 타결지었고, 1990년에는 김일성이 가네마루 신(김환신)을 만나 대일 수교 교섭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김정일의 서울 방문이 이뤄질 경우 의미있는 정책변화가 예상된다.

그리고 북한은 정상이나 정상급 회담을 늘 평양이나 묘향산 등 북한에서 개최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인적·물적 자원을 편리하고 신속하게 100%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을 살리고 또 자신들의 의도대로 상대방 대표단을 이끌어 간다. 이번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김정일이 전 세계와 한국을 상대로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북한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환경을 조성하여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과거에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이나 “서울 불바다” 발언 등 ‘벼랑 끝 전술’이나 위기 조성을 통해 협상 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김 대통령을 비롯한 참가자들에게 최상의 대접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였다.

더욱이 북한은 상대방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함으로써 자신들에게 호감을 갖도록 하여 협상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카터가 방북(방북)했을 때 북한이 김일성과 카터 내외가 요트에서 선상 회담을 하도록 주선한 것처럼 이번에 김정일이 김 대통령을 공항에서 직접 영접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함으로써 회담을 주도해 나갔다. 이것은 미·북 제네바 협상이 장시간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북한이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맥도널드 햄버거를 제공한 파격적인 행동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북한은 회담 분위기를 성숙시킨 후 새로운 제안이나 기습 제안 등을 통해 협상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이 통일방안을 공동선언에 포함시켰는데, 이러한 점은 김일성이 카터를 만나 핵 동결을 기습적으로 제안한 사례나 1993년 7월 미·북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이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을 기습 제안한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북한이 비공개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김정일이 공항에서 영빈관까지 김 대통령과 동승하여 상대방의 분위기나 입장을 알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볼 때 앞으로 대북 협상 전략에서 가장 중시할 점은 김정일의 서울 방문이다. 그의 답방은 단순히 의례적인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중요한 정책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정책이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 김정일의 서울 방문을 성사시킴으로써 남북관계를 명실상부한 화해 협력의 단계로 진입시켜야 하겠다.

/ 김 용 호 한림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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