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미 의회조사국(CRS)이 주최한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첫 의회 세미나장. 상·하원 의원 보좌관 5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자주(자주)만 강조됐다. 북한이 미군 철수와 보안법 철폐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남북간 경제협력도 김정일(김정일) 페이스대로 진행될 수 있다. ”

빌 드레난 평화연구소 연구원이 먼저 운을 뗐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집행국장은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변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라면서 “남한이 북한에 대규모로 경제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존 메릴 국무부 동아시아 정보 담당관은 “이번 회담은 과거와 다르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회담장의 시큰둥한 분위기를 희석시키려 했지만, 래리 닉시 의회조사국 연구원의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돈 때문”이라는 발언에 묻혀 버렸다.

닉시 연구원은 “한국 내에서 고조되고 있는 반미운동은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주한미군 철수론 등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과제”라고 말했다.

의회조사국의 한반도·일본 담당 분석가인 신인섭씨는 “북한의 의도에 대한 정확하고 종합적인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서울에서는 어느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질문에 나선 한 의원 보좌관은 “그동안 미국이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왔는데, 미군이 빠져나갈 경우 한국의 입장에서는 세력균형을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엄포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외정책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미 의회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행정부와는 색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동안 각종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세미나가 붐을 이뤘지만, 의회 내에서는 우선 별다른 메아리가 없다. 상·하원의 외교위원회나 동아태 소위원회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이 거론된 적이 없다.

특히 상·하원을 지배하고 있는 공화당 쪽의 반응은 냉담하다. 공화당 상·하 의원 중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공식 코멘트를 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선거철이기도 하지만 추이를 더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그나마 빌 클린턴 대통령이 속해 있는 민주당 쪽에서는 조셉 비덴 2세 상원의원이 최근 찾아온 이홍구(이홍구) 대사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외에 토니 홀 하원의원이 최근 본회의장에서 “남북한이 단기간 내에 큰 진전을 이뤘다”며 “성과를 이룰 것으로 확신한다”고 발언한 것 정도가 민주당에서도 눈에 띌 정도다.

이날 CRS 주최의 세미나는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는 미 의회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했다.

제시 헬름스 상원 외교위원장이 16일 CNN과의 대담에서 “주한 미군 철수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발언한 것은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칠게 표현하면 ‘남북한끼리 잘 해봐라’는 식의 감정이 깔려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탓인지 이홍구 대사는 상·하원의 한반도 관련 의원들을 잇달아 면담하는 일정을 잡아 놓고 있다.

/워싱턴=주용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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