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섭 논설위원 dskim@chosun.com

인구학자들은 인구 센서스가 제대로 안 되는 대표적 국가로 중국과 인도, 북한을 꼽는다.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크고 오지도 많아 애초부터 전수(全數) 조사가 쉽지 않다. 인도 정부는 2001년 인구가 10억명을 넘었다고 발표한 이래 인구조사를 손 놓은 상태다. 교통망이 나쁘고 집에서 낳는 아기가 많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3년 첫 센서스 이후 식량난으로 굶어 죽은 사람과 탈북자가 많아지면서 추계치로 인구를 발표한다.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이 작년 10월 보름 동안 북한에서 인구 센서스를 실시한 결과 인구 2405만1218명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그제 밝혔다. 1993년 2121만에 이르렀던 인구가 경제난 탓에 1800만 아래로 줄었을 것이라는 북한 전문가들 예측을 뒤엎는 숫자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 출산을 억제했으나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난 1996년부터 낙태를 금하고 아기를 많이 낳는 집에 특별보조금을 주는 출산 장려정책을 펴왔다.

▶북한도 인구의 40%가 평안도 지역에 몰려 있어 수도권 집중이 심했다. 평안남도 405만1706명, 평양시 325만5388명, 평안북도 272만8617명이었다. 우리와 달리 여자가 남자보다 60만명이 더 많았다. 그러나 북한은 처음엔 결과를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조사 항목이 기본 개인정보부터 소득, 가구·가전제품 목록, 화장실·난방·상하수도 유무까지 53개에 이르는 정보의 보고(寶庫)여서다.



▶북한이 어쩔 수 없이 결과 공개에 동의한 것은 센서스에 한국의 돈과 노하우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유엔인구기금 요청에 따라 남북협력기금에서 북한 센서스 비용 550만달러 중 400만달러를 지원했고 통계청도 센서스 방식과 기법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유엔인구기금은 북한 조사요원 3만5200명을 동원해 588만7767가구를 집집마다 방문 조사했다.

▶북한이 센서스 결과를 국제사회에 공표한 것을 두고 유엔인구기금 측은 "흥미로운 개방"이라고 보았다. 술탄 아지즈 아태국장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나와 "북한이 이런 자료를 발가벗고 내놓는 것은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자신들이 처한 현실부터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북한이 머지않아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아 사망률과 평균 수명을 비롯해 올 하반기에 나올 상세한 센서스 결과는 누구보다 북한 자신에게 상당한 충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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