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서강대 교수·정치학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우리 대통령이 6·25를 민족통일 전쟁으로 평가했다는 보도는 놀라운 일이다. 김정일이 인민군 창설기념식에 했음직한 이야기를 우리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에 담았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 대통령이 이런 역사인식을 가졌다고는 믿지 않는다. 필시 국가관이 투철하지 못한 연설문 작성자가 준비한 원고를 대통령이 깊은 생각 없이 읽었으리라.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을 생각할 때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선량한 동포 수백만명을 죽인 반민족적 테러인 6·25를 저질러 놓고도 이를 민족해방전쟁이라 부른다. 그리고 고려 왕건의 후삼국통일에 비유한다. 북한이, 고구려를 승계한 고려를 인민공화국이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고구려 유적을 날조하고 통일방안도 ‘고려민주연방’이라 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국민적 합의로 창건한 국가이다.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투쟁했다. 6·25라는 북한의 반민족적 폭거에 대항하여 우리 국군은 15만명의 젊은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다.

그리고 북한과 같은 반민족 집단이 두 번 다시 이런 전쟁을 못하도록 악(惡)의 뿌리를 뽑기 위해 1950년 10월 1일에 우리 국군은 38도선을 넘어 북진했다. 이 뜻깊은 민족해방의 장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날을 국군의 날로 정하고 매년 우리 국군의 사명을 다짐하고 있다. 바로 이날에 6·25를 고려통일에 견주는 통일전쟁이라 천명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북한 정책에 관한 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을 챙겨주기 바란다.

첫째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또한 이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겠다고 서약한 이 나라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헌법의 중핵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이념이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수호에 앞장서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많은 국민들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대북유화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우리 정부가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6·25는 역사가 아니다. 현실이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6·25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가. 이런 국민들의 정서를 헤아리지 않고 6·25의 원흉을 찬양한다거나 동족에 가한 가장 비열한 테러행위인 아웅산 사건과 KAL기 폭파를 지시한 장본인인 김정일을 국빈으로 초청한다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둘째로 대통령은 우리 국군의 통수권자이고 최고사령관으로서 우리 국군의 명예를 해치는 일은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젊은 목숨을 던져 대한민국을 지켰던 호국영령들을 위로하는 현충일에 그들이 싸웠던 주적을 통일의 동반자로 초청하는 연설을 한다면 그 영령들은 물론이고 지금도 총을 들고 전방고지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우리 장병들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 북한은 남한해방을 이루어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6·25를 잊은 국민, 6·25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민족대단결’을 앞세워 접근하면서 ‘이념을 초월한 통일’을 선동하고 있다. 이들의 지지를 얻어 서울에 친북 정권을 세워 그들이 원하는 통일을 이루려는 그들의 속셈을 모르는가.

그들의 집요한 정치공세 속에서 우리사회 내에 이미 이념의 혼란, 역사인식의 혼란, 대한민국의 정통성 인식에 대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이 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이끌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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