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일성 사후 우리 민족을 ‘김일성민족’으로 부르고 있다. 이 말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김정일이며, 그는 74년 2월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의한 적도 있었다. 김정일은 94년 10월 김일성 백일재(百日齋)가 있던 날 당중앙위원회 간부들과 가진 담화에서 “지금 해외동포들은 조선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하고 있다”고 했고, 이후 이 말은 북한 출판물과 매체가 금과옥조로 인용하는 ‘법어’가 됐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김정일민족’ ‘태양민족’이라는 용어도 내놓았다. 평양방송은 96년 7월 김일성 2주기에 즈음해 내보낸 정론에서 "우리는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우리는 태양의 나라에서 사는 김일성·김정일민족"이라고 읊었다.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 문예잡지 '조선문학' 2000년 1월호는 머리글에서 "우리 작가들은 태양의 위성작가, 태양민족문학의 창조자이며 태양민족문학은 위대한 영도자의 문학, 강성대국의 문학이며 주체의 인간학"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말하는 ‘김일성ㆍ김정일민족’의 범주는 다소 모호하다. 북한 주민들이야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겠지만 남한과 해외동포까지 포괄하는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북한 언론과 출판물의 표현과 문맥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북한 주민들은 이미 김일성의 은혜를 입어 김일성민족이 됐고, 남한과 해외동포들도 앞으로 김일성민족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비쳐진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하나의 민족·하나의 국가'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남한 국민들과 해외동포들도 ‘김일성민족’으로 편입될 때 달성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족의 이름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알렉산더민족, 칭기즈칸민족, 히틀러민족, 스탈린민족 등의 말은 없는 것이다. 더구나 후손들이 선대의 위대한 인물을 숭앙해 추증하는 것도 아니고 당대에, 그것도 아버지와 자신의 이름을 민족 앞에 붙여 스스로 민족의 시조 행세를 하려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고 낯 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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