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집없이 떠돌면서 구걸하거나 도둑질하는 유랑자들을 ‘꽃제비’라고 부르지만 그 어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북한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며 북한 사전 등에도 이 단어가 올라 있지 않다.

그런데 지난 3월 중순 발표된 북한의 장편소설 ‘열병광장’에 ‘꽃제비’에 대한 설명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 소설은 김일성의 일대기를 다룬 총서 ‘불멸의 력사’ 시리즈의 하나로, 광복 후 북한정권 수립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시장바닥을 헤매는 집 없는 아이들을 꽃제비로 부르고 있으며, 이 말이 이미 광복 시기부터 쓰였고 러시아어에서 변형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넝마 차림으로 해주 바닥을 사흘째 헤매고 다니자 조무래기들이 쫓아 다니면서 “야, 꽃제비다!”하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또 “꽃제비를 못 봤수?” “곡마단 꽃제비가 오지 않았수?” 등의 대사가 등장한다.

또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소련사람들이 유랑자, 혹은 유랑자들이 거처하는 곳을 가리켜 말하는 '코체브니크', `코제보이', `코제비예'라는 말을 (아이들이) 제멋대로 해석하고 옮긴 것”이라면서 “꽃제비라는 전혀 가당치 않은 서정적이고 앙증스러운 이름으로 소리쳐 부르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천진한 야유였으랴”라고 서술하고 있다.

러시아어로 코체비예(kОЧЕВЬЕ)는 유랑, 유목, 떠돌이라는 뜻이고, 코체브니크(КОЧЕВНИК)는 유목자 방랑자, 코체보이(КОЧЕВОЙ)는 형용사로 유목의, 방랑의 뜻이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8·15 광복과 6·25 전쟁 후 꽃제비라는 말이 많이 나돌기도 했지만, 65년쯤부터 85년경까지는 이 말이 거의 사라졌다. 고아들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관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5년 이후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다시 꽃제비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90년대 들면서 북한을 상징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됐다.

그동안 꽃제비의 어원에 대해서는 소매치기를 뜻하는 ‘잽이’ ‘잡이’와, 중국어로 거지를 의미하는 ‘화자’ 등에서 왔다는 추측이 있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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