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린 지난 9월15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는 현대측과 별도회담을 갖고 「5차 장관급 회담은 현대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히고 「금강산 관광대가를 당초 약속대로 지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북한이 남북당국간 회담이 열리고 있는 같은 시점에 현대측과 별도회담을 가진 것 자체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회담에서 5차 장관급 회담이 「바쁜 가운데서도 장군님의 현대에 대한 배려 때문」이란 것을 3차례나 강조했다니 이쪽 정부의 처지가 말할 수 없이 우습게 됐다.

이것은 북한이 앞으로 남북대화는 돈이 되는 금강산 관광문제에만 치중하겠다는 의사표시이며, 그것도 현대와 직접 거래를 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아태와 현대측의 면담록에 따르면 김정일이 개성공단과 경의선, 임진강댐 등 다른 여러 사업도 현대측에 맡기겠다고 했다고 한다.

북한의 의도가 이러하다면 지난 5차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한 8개항의 합의사항들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을는지도 의문이다. 정부 당국은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의한 사실을 두고 북한이 어느 때보다 남북대화 의지가 강한 것으로 평가했지만 결과는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회담은 있되 성과는 없는 대화가 반복될 가능성이 많아 진 것이다.

북한이 남한 정부를 따돌리고 현대와 상대하려는 또다른 속셈은 금강산관광대가 미납금을 챙기는 데 있는 것 같다. 북측이 현대를 적극 밀어줌으로써 미납금을 받아내기 쉽게 하겠다는 것이다. 북측은 별도회담에서『대가지불 전망이 확고해야 전반적 사업추진이 유리하다』『관광대가도 제대로 안들어 오는데 무슨 문제를 또 해결해주려 하느냐는 항의가 많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었다. 그동안 금강산 관광객수에 따라 북한에 대가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처럼 발표했었으나 이번 별도회담에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현대측은 지난 2월부터 5월까지의 미납금만도 2400만달러에 달하며, 9억4200만달러를 오는 2005년 3월까지 지급하기로 현대측은 약속했었다.

북한은 남한 정부를 별의미없는 「들러리」로 세우고 돈은 돈대로 챙기는 「꿩먹고 알먹기」를 노리고 있는 셈이며, 남한 정부는 북한에 이끌려 실속없고 「짝사랑」에 빠진 꼴이고, 현대는 북한과의 거래로 남한 정부의 환심을 사 「현대살리기」를 도모하고 있는 형국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