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6·25 전쟁을 ‘성공하지 못한 통일 시도’라고 지칭해서 대통령의 ‘6·25’ 인식에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남북간의 평화공존과 교류를 강조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썼다고는 하나 이것은 단지 표현상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김 대통령이 6·25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문제의 연설에서 국군의 조국수호 노력을 치하하고 안보와 화해협력 속에서 한반도 평화와 교류협력을 이끌어 갈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상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는데, 신라와 고려의 통일은 성공했음에도 세 번째 시도인 6·25 사변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 세 번의 시도가 모두 무력에 의한 시도였다면서 이제 네 번째의 통일 시도는 결코 무력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6·25를 신라와 고려에 의한 통일과 같은 수준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6·25 전쟁을 ‘통일 시도’로 보는 것도 6·25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의 시각과 입장에 부합되지 않는다. 북한의 입장에서 본다면 6·25는 엄연히 ‘무력을 통한 통일 시도’였기에 이런 언급은 북한의 시각에서 출발한 인식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갖게 한다.

남쪽의 입장과 확인된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6·25는 공산주의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일당이 대한민국을 적화하기 위해 일으킨 민족의 비극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고,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든 이 비극을 어떻게 ‘통일 시도’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국민 중 몇 %가 6·25를 ‘실패한 통일 시도’로 인식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혼란스럽고 당혹할 따름이다.

6·25 전쟁에 대해선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지난 80년대에는 이른바 수정주의 이론이 성행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후 공개된 문서는 6·25에 대한 책임이 소련과 김일성에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 세미나에 참석한 학자도, 제3자적인 관찰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6·25로 참담한 피해를 당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남쪽의 정통성을 수호할 의무를 띠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것도 하필이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의 시각을 연상시키는 듯한 애매한 용어를 구사한 것이다. 대통령 주위에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은가 의심되며,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의 혼란상태가 초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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