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새로운 환경에서 양자 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 것인지 주도면밀한 탐색전을 펼치고 있다.

외교의 무게중심을 그동안의 대미 협상에서 남북 직접 협상과 전방위적 외교 쪽으로 옮긴 북한은 얼굴을 돌려 미국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최근 ‘불량국가’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상당부분 탈색시킴으로써 핵·미사일 문제에 국제 여론의 압박을 피해나가고 미국의 테러리스트국 지정을 면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일종의 대미(대미) 우회 포위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우선 적성국 교역법에 따른 경제 제재 완화를 19일 발표했고, 이에 앞서 밀 5만t지원 약속으로 화답했다. 이는 미국이 현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웬디 셔먼 자문관은 북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 속셈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최근 나타냈다.

미국은 오는 28일 미·북간 미사일 회담을 향후 미·북관계 진전 여부를 잴 수 있는 가늠자로 여기고 있다. 북한이 작년 9월의 미사일 발사 동결에 이어 개발·수출중단 등에 대한 미국의 요구에 대한 수용여부가 관심사다. 지난달 말 로마에서 끝난 카트만·김계관 회담이 재개되면 북한 핵 문제가 주요 의제로 등장한다.

만일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다면 미·북관계는 고위급회담과 테러리스트국 지정 해제→연락사무소 설치→국교 정상화 등 급속도로 진전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 파키스탄 탄도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던 북한의 미사일 기술자들이 최근 철수한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북한이 지금까지 대외 협상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핵과 미사일을 전면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관측이 더 많다. 특히 미국이 반대 급부적인 경제지원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북한으로서는 양국 관계 타결을 내년 초 출범할 신 행정부와 모색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길 수 있고, 임기말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 클린턴 행정부도 미·북 관계를 서두를 유인(유인)은 적다. 이럴 경우 미국과 북한은 관계 진전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서로 인정하면서도, 현안 타결에는 소강상태를 보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장 변수가 되는 것은 주한 미군 문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노동신문을 인용,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완화를 찬성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보도한 진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페리보고서’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미·북관계의 관건은 당분간 김정일(김정일) 위원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워싱턴=주용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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