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평양의 사흘을 전 세계가 주시했다. 우리 또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도 현실이 참인지 거짓인지 믿기 어려운 나날이었다.

방북 첫날, 평양 공항에서 두 정상이 손을 잡을 때부터 사람들은 진한 감동으로 전율하며 눈물을 머금었다. 우리 대통령은 진심어린 환대를 받았다. 북쪽의 지도자는 정성을 다해 선물보따리를 챙겨주려는 모습이었다.

마침내 오는 8월 15일에 이산가족 교환방문 등 5개항에 걸쳐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 같은 핏줄을 갖고 있는 형제요, 동포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시간들이었다.

잘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집안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여타 모임에서 내가 만나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 정상이 보여준 가식없는 진실 그 자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 속에서도 불안의 작은 꼬리 하나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온 사이였기 때문이다. 체제나 환경도 판이하게 다른 처지였다. 그것이 그저 갑자기 달아오른 가슴 하나로 단숨에 지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94년 1월 31일, 북한의 개성에서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능의 개건비(개건비)를 세우는 의식이 있었다. 단순히 비석을 세우는 의식이 아니었다. 왕건의 능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전각과 석축, 석물을 비롯해 경내를 웅장하게 조성하는 공사를 완성했던 것이다. 92년 왕릉을 돌아보며 개수를 지시한 김일성 주석은 “왕건은 분열된 우리 민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침략세력을 견제하여 강한 나라를 세운 군주”라고 극찬했다 한다. 그 ‘왕건’이 남쪽에서는 KBS 대하 드라마에서 다시 살아나 1000년 전의 웅혼한 통일 기상을 재현해주고 있다.

드라마 원고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작가로서 집필 의도에 그렇게 썼었다. 남과 북의 동질성 회복에 이만한 공감대를 형성할 소재도 흔치않을 것이라고. 집필에 들어가기 전, 왕건의 능이 있는 개성만은 한번 꼭 다녀오고 싶었으나 허망한 바람으로 끝났다. 남북이 함께 통일에 기여하는 드라마를 만들었으면 하는 공동제작의 꿈도 접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저들도 우리와 같은 기대, 같은 희망, 같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저들도 우리처럼 태조 왕건의 역사를 되짚으며 통일의 꿈을 가꾸어 왔다는 것을.

왕건은 통일신라가 붕괴되면서 50여년의 풍상과 싸워가며 결국은 통일을 이뤄낸 영웅이다. 묘하게도 지금의 분단 세월이 1000년 전 그 때의 그 세월과 비슷하게 맞물린다. 시련과 인고의 긴 터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아마도 같은 세월을 요구했던 것이 아닐까. 왕건의 통일과정을 지켜보면 그는 당시의 호걸들인 궁예와 견훤보다 유난히도 참을성이 많은 군주였다. 외유내강하며 기다릴 줄 알았던 인물인 것이다.

이산의 아픔을 체험한 작가 이호철은 에세이집에서 “마침내 ‘통일절’은 온다”고 쓴 적이 있다. 언젠가 분명하게 다가올 통일에의 기대와 믿음을 담은 글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남과 북에서 두 사람의 인내심 깊은 왕건이 동시에 나란히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영원한 ‘통일절’의 그날을 위해서는 하나가 아닌 두 사람의 왕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머지 않아 김정일 위원장이 남으로 내려올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받았던 환호와 감동을 김 위원장에게 그대로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1000년 전 왕건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이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은 새로운 왕건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고.

/ 이 환 경 KBS 드라마 ‘태조 왕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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