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동포의 굶주림을 덜어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돌연 대북(對北) 쌀지원을 들고 나오는 데는 우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국내 쌀이 600만섬의 적정재고(在庫)를 300여만섬 초과하니, 이 중 200만섬을 북한에 보내자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남쪽의 쌀 재고 과잉과 북쪽의 식량난을 동시에 해결하는 그럴 듯한 발상 같기도 하다.

문제는 이 제안의 주체가 한나라당이면서도 그 지원절차와 방식이 한나라당이 그토록 비판해오던 이 정부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 듯한 데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껏 이 정부의 대북지원을 퍼주기와 「졸속(拙速)」으로 규정하고, 상호주의적 장치의 도입과 국내정치에 이용할 가능성을 차단할 것을 요구해 왔다. 바로 이 비판 기준에 한나라당의 대북 쌀지원 제안을 비춰보면, 한나라당의 자가당착이 드러난다.

홍순영 통일부장관으로부터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을 보고받은 바로 다음날 당내외의 연구검토도 없이 덥석 200만섬 지원을 들고나온 것부터 졸속이다. 국내산 쌀 200만섬이면 비용으로 5억달러 상당이고, 이건 이 정부 3년 반 동안 대북 직접지원 규모인 2억7000만달러의 2배에 해당한다. 상호주의적 장치도 없이 이런 규모를 지원한다는 것은 야당식(野黨式) 퍼주기일 뿐이다.

당내에서 흘러나오는 말대로 농민들의 정서가 심상치 않으니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는 게 낫다라는 발상이라면 대북정책의 국내 이용 바로 그것이다.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번 쌀을 보내도 그것이 굶주린 북한동포의 부엌으로 들어갈 것 같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95년 쌀 15만t을 북에 보냈을 때도 그랬었지만 질 좋은 쌀은 당 간부에게 배당되거나 군량미로 전용되는 게 그쪽 현실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이 정부의 「대북 퍼주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5억원 이상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할 때는 국회동의를 받도록 법개정안을 제출해놓고 있다. 법 개정안의 제출 정신과 이번 즉흥적 쌀지원 제안의 연관성을 한나라당은 설명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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