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에서 8·15 가족·친척 방문단 교환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자는 합의가 이뤄진 후,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 행사를 넘어서서 정례화·제도화될 수 있을 것인지, 납북자·미귀환 국군포로 등은 빠지고 비전향 장기수(우리 정부 공식명칭은 출소 남파간첩 및 공안사범) 문제만 언급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 여러 논란거리가 제기되고 있다. 본사는 18일 오전, 적십자사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는 이병웅(이병웅) 한서대 교수와 제성호(제성호) 중앙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이 문제를 점검해 보았다.

▲이병웅=이산가족 문제가 남북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 사실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주의적 문제여서 북한이 거부는 못하지만 계속 피해왔던 사안이었다. 두 정상이 합의함으로써 어떤 형태로든 실현이 되리라 생각한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큰 틀로 보면 공동선언은 흩어진 가족·친척 방문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두 가지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의 이산가족 문제는 이 밖에도 납북자, 군 포로, 탈북자, 월남 귀순자 등의 문제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남아 있다.

▲제성호=남북의 정상이 직접 합의 서명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는 실천성을 갖게 됐다. 이산의 고통을 겪는 분단 희생자는 실향민과 비전향 장기수 이외에도 탈북자, 월남·월북자, 국군포로, 납북 억류자 등 여러 부류가 있다. 이번에는 이산의 대표적인 희생자인 흩어진 실향민을 교환방문하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해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자는 합의를 도출해냈다. 이는 이 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이산가족 문제도 차츰 함께 처리해나가자는 취지로 이해가 된다.

정상간 합의에 따라 남북이 적십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했는데, 이것이 지난 85년 12월에 마지막으로 중단된 남북적십자 제10차 회담에 이어 제11차 본회담이 될지, 아니면 이번 6·15 선언에 국한된 회담이 될지는 분명치 않다. 연속성을 위해 제11차 회담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이산가족 문제의 지속적 해결의 고리를 마련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남북적십자회담은 이산가족 상봉, 생사확인, 서신왕래, 자유왕래, 재결합에 이르기까지 이산가족 문제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으니 이를 꺼내놓고 모두 협의해나가는 것이 좋다.

▲이=이번 8·15 방문 교환에 그치지 않고 회담이 계속돼 나머지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서신교환, 재결합 등 기타 인도주의적 문제들이 해결돼야 비로소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15 선언의 취지도 그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도주의는 어떤 조건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산가족은 물론, 납북자, 비전향 장기수 등 어떤 경우이든 본인의 자유 의사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는 정치적 문제가 걸려 있는데 먼저 그들의 희망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비전향 장기수나 국군포로는 쌍방의 체제를 건드리는 민감한 문제와 관련된 부분들이다. 납북 어부의 경우도 테러리즘의 문제가 개입돼 있다. 이들은 순수한 실향민들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따지다 보면 타협이 어려워진다. 앞으로의 이산가족 상봉은 이산의 원인이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이산돼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게 해 이산의 고통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6·15 선언의 제3항이 도출된 것도 이런 접근법이라고 본다.

비전향 장기수에는 빨치산 출신도 있고, 남파 간첩으로 실형 선고를 받은 사람, 자생적 공산주의자 및 공안사범도 있다. 이 중에서 예를들어 김인서 김영태 함세환 등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3명은 북측 입장에서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 100명 교환방문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상호주의를 완전한 대칭적 의미로 봐서는 안 된다. 이들 비전향 장기수 3명을 보내서 북측 가족들을 만나서 재결합을 시켜준 뒤 남기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북측이 일반 이산가족 처리문제에 오히려 부담을 가질 것이다. 100명 속에는 납북어부, 국군포로의 가족도 포함시키면 좋겠다.

▲이=이산가족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자는 방안에 찬성이다. 방법면에서는 비전향 장기수나 납북자 등을 상호면담을 통해 자유의사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향이라고 다 북한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460명의 납북자 중에도 남아 있고 싶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의사에 따르는 것이 가장 인도적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한 번의 교환방문으로 끝날 가능성이다.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제=북한이 가장 관심을 갖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외면하고 우리 실향민만 생각한다면 타협이 껄끄럽고 잘 안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산가족이 750만명이고 1세대만 113만명 가량된다.

이번에 가봐야 100명 정도이므로 비전향 장기수들을 상징적으로 몇명 포함시켜 다음 단계를 위한 고리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좋다. 비대칭적 비등가성 상호주의로 신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곧 있을 남북적십자 제11차 회담에서는 흩어진 가족들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고, 12차에서는 본격적인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회담이 계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남북의 정상이 직접 합의했다는 점에서 이산가족에 관련한 모든 문제, 즉 생사확인, 서신왕래, 상봉 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신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내부적으로는 이번 방문단에 누가 가게 될지 선정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과거처럼 공정한 선정을 위해 전산처리할 수밖에 없다.

▲제=이번 8·15에는 범민족대회가 열리는 등 남북 교류가 다양해지고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경제적·사회적 교류도 활성화될 것이므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북한이 예전보다 적십자의 중요성을 더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17일 우리측에 접촉을 제의할 때, ‘실무 접촉’이 아니라 ‘회담‘이라는 말을 썼고 회담 상대도 부위원장급을 내세웠다. 이 같은 고위급을 협상 상대로 내세운 것은 85년 적십자회담에서 부총재급 접촉이 있은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북측에서 그 정도 고위급 인사를 내세우는 것으로 봐서 이번 회담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전체적인 문제를 논의하고자 하는 뜻으로 보인다.

▲제=북측은 이번에 틀림없이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우리도 ‘납북 억류자’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쓰지 말고, 이산가족 방문자 명단에 이들 가족을 포함시켜 조용하게 북한을 설득하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이산가족의 생사 확인이나 서신 교환 등은 남북 교류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서로 생사가 확인되고 제사도 지내게 되면, 약재 등 우리쪽이 필요한 물품과 북측이 필요한 생필품 등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남북간 신뢰를 밑바탕에서부터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제=이산가족 상봉이 활성화되면 이산가족 기업인들의 고향 투자, 소규모 송금이나 증여 허용 문제 등도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이산가족 문제가 고향을 돕는 사업으로까지 이어지면 이북5도민회 등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업이 벌어지게 되면 이산가족 모두가 고향에는 못간다고 해도 소식을 듣게 되고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제=이산가족이 만나는 다양한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출신 이산가족들을 금강산 관광에 참여케 해 그 중 1박2일 정도 고향에 가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이=판문점, 금강산, 신의주 등에 면회소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도 인천, 부산, 동해 등에 면회소를 설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8·15 이산가족 교환뿐 아니라 이산가족 문제 전반을 풀어나가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도 이번에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니 정치 문제를 배제하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처리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8·15 교환 방문이 지속성을 가지도록 제도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필요할 경우 왕래 절차, 신변안전보장, 교류 규모·범위 등과 관련된 합의서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계속 왕래하는 게 쉽지 않다면 후속 회담에서 면회소 설치 등으로 상봉을 정례화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산가족 정보 통합센터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이 14만6000건 들어와 있다는데 실제 이산 가족 현황은 123만명에, 60세 이상은 6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정확한 실태 파악도 중요한 일이다.

▲이=85년 남북 방문단이 교환됐을 때는 남북관계가 완전히 대치상태였지만 지금은 화해·협력이라는 기본 흐름이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인도적 차원에서 많은 물자를 지원해 민족화해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북측도 포용정책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85년이 불신에서 시작했다면 지금은 이해의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제=92년 북한에 가서 북측인사를 만나봤더니 85년 교류에서 별 재미를 못봤다는 얘기를 했다. 체제 안정에 부담이 되는 부정적 파급 효과가 더 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권 문제로 비난받아온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도 개선하고 ‘통 큰 정치’를 과시할 수도 있으며, 남측으로부터 좀 더 많은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약속받을 수도 있는 등 이익이 더 크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이=92년 제2차 고향방문 때 내가 수석대표를 했었는데. 인원, 일정 등 모두 합의된 상황에서도 이인모를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해서 협상이 깨졌다. 이번에도 비전향 장기수 문제 등이 걸려 있으므로 문제가 많을 수 있는데 복잡한 조건이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포괄적으로 여러 문제를 묶어서 해결하는 것이 전제조건을 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리=홍석준기자 udo@chosun.com

/김덕한기자 duc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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