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북정책 추진의 제도적 맹점은 정부가 대북지원을 위한 국가예산을 자의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협력기금법에 근거해 국회가 예산심의과정에서 남북협력기금 규모를 결정하면 그 다음은 국회의 제재를 받지 않고 정부가 이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연히 국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지원여부를 결정해야 할 사업에 대해서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가 하면 순수한 남북관계보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사업 우선순위가 정해져도 어쩔 수 없게 된다. 「대북 퍼주기」도 그런 제도적 허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북협력기금을 금강산 관광사업 적자보전에 사용한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정부는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 적자보전 지원에 대한 많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기금을 지원했다. 남북교류협력법상 지원이 금지된 「30대 기업」에 속하는 현대아산에 대한 직접지원이 어렵자 현대와 관광공사를 컨소시엄 형태로 만들어 9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450억원은 이미 지출돼 현대가 북한에 주기로 한 「관광대가 미납금 지불」에 사용됐다. 비슷한 시기에 결정된 11개 교역업체의 인천·남포 간 항로단절로 인한 손실 8억여원 지원에는 현장조사 등으로 무려 40여일이 걸렸지만 금강산 관광사업 적자보전지원결정은 불과 며칠 만에 끝났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사를 수렴한 적도 없었다.

이처럼 국민혈세 수백억원을 쓰면서, 그것도 대북사업에 대한 상충된 국민시각이 많이 존재하는데도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전체에 대한 국회동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 자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잘못된 것이다. 작년 9월 북한에 식량 50만t을 지원하면서 남북협력기금 1000억여원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통일부는 차관형태로 지원했지만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는 「차관」이 아니라며 남북협력기금 지원결정을 했던 것이다.

이같이 잘못된 대북지원 결정 방식은 이제 적절히 시정돼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남북협력기금 지원에는 국회동의를 받도록 남북협력기금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은 자신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낭비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동안 말썽을 빚었던 대북정책의 투명성과 효율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개성공단 조성, 금강산 육로 관광도로 개설 등 앞으로 추진할 많은 사업이 대규모 예산을 소요할 터인데도 국민의사와 관계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예산지원 결정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런 관점에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지도부가 합의한 법개정에 찬성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