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1시 서부전선 최전방 육군 전진부대 관할 해발 167m 도라전망대. 자욱한 안개 너머 북한군 214 GP(최전방 관측소) 아래 설치된 대남확성기 3대에서 남자 아나운서의 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와 김대중 대통령의 북남 최고위급 회담은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역사적 만남이었습니다…. ”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내용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간간이 선전가요가 방송되긴 했으나, 남한을 비방하는 내용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지난 14일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뒤, 최전방에도 평화통일을 향한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었다.

인근 최북단 마을인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에 산다는 전창권(전창권·55)씨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찬양, 체제 선전, 월북 종용 등 평소 대남방송 주요 프로그램들이 싹 사라졌다”며 “공동선언 내용이 꼭 성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육군 전진부대 장대성(장대성·24) 소위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상회담 성과를 환영한다”면서도 “과거 교훈을 살려 어떠한 도발에도 대응할 수 있는 안보태세는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도라전망대에는 실향민, 외국인 등 단체관광객 1800여명이 찾았다. 전망대측은 “평소보다 20% 가량 많은 숫자”라 했다.

관광객들은 “정상회담이 ‘통일’이라는 결실을 이루기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후 3시 북한군과 970m 거리로 대치하고 있는 승리부대 중동부 전선. 어제까지만 해도 요란하게 들리던 대남 비방방송이 싹 사라졌다. 초병들은 전날 청취된 대남방송 톤도 과거와 사뭇 달랐다고 했다.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의식해선지 1개월 전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특정인 비난 방송이 일체 중단됐다. 미국 비난 수위도 대폭 낮춰졌다. 우리측은 종전 방송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상대를 쓸데없이 자극하는 방송은 자제해 왔던데다, 라디오방송을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정도로 대북방송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이 부대 지휘관들은 초병들에게 “남북 화해는 이제 첫 걸음을 뗐을 뿐이니, 막연한 분위기에 젖어 감상에 빠지면 안 된다. 튼튼한 안보만이 통일을 앞당긴다”며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있었다.

/철원=김창우기자 cwkim@chosun.com

/도라전망대=김민식기자 callin-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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