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남북 정상회담 취재차 서울에 모인 외신기자들의 방담을 마련했다. 프레스센터가 설치돼있던 롯데호텔에서 15일밤 있었던 방담에는 에드워드 닐런 미국 헤리티지 재단 선임 연구원과 도널드 커크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서울 특파원, 이언 윌리엄스 영국 ITN 방송 아시아 특파원이 참석했고, 리바오둥(이보동) 중국 신화통신 서울 특파원과 오사와 분고(대택문호) 일본 마이니치(매일)신문 서울 특파원은 시간상의 이유로 개별 인터뷰에 응했다. 사회는 김성용 국제부 차장대우가 맡았다. /편집자

◈이언 윌리엄스 : 영국 ITN방송 아시아특파원

◈에드워드 닐런 : 미국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오사와 분고 :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리바오둥 : 중국 신화통신 서울특파원

◈도널드 커크 : IHT서울특파원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보나.

닐런=아직 판단 기준이 없다. 김 위원장이 한국을 답방한다면 ‘큰 일(Big Deal)’이 되겠지만, 무산된다면 ‘또 하나의 서커스’로 끝날 수 있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도 임기 중반이 지났으니 ‘레임 덕이 올린 것 치고는 괜찮은 성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윌리엄스=지난 97년 홍콩 반환 취재 당시와는 달리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번 회담으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닐런=예측할 수 없었나? 모든 것이 잘 짜여진 각본으로 보였다.

커크=회담 성공 여부는 두 정상간의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느냐에 달려있다.

리바오둥=남북 두 정상이 처음 만나 화해를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사와=합의 내용은 7·4 남북 공동 성명 및 남북 기본 합의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성공은 성공이다. 실무자나 총리급이 아닌 국가 원수가 직접 만났다는 점에서 이전 합의서보다 실효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본다. 특히 지난해 여름 서해 교전 이후 1년 사이에 화해 무드가 조성된 것은 큰 성공이다.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positive momentum)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닐런=그렇다. ‘우호적인 분위기’ 자체가 이번 회담의 본질이다. 50여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자체로 아주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핫라인 설치, 사무소 설치 등 작지만 실현 가능한 것들을 왜 지금까지 논의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윌리엄스=회담 자체는 성공이다. 직통 전화, 철로 개설도 논의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커크=이산가족 상봉 등 현실 문제에서 ‘명목주의(tokenism)’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산가족 수백만이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백명의 ‘명목상’ 만남은 형식에 불과하다.

리바오둥=양국은 합의 내용을 이행할 것이다. 이번 회담이 단순한 ‘쇼’는 아니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1년 내에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생각한다. 방문은 8월15일 이산 가족 상봉 이후가 될 것이다. 남북간 철로가 연결된 이후 기차로 방문할 가능성도 있지않을까.

―북한이 정말 변했다고 보나. 아니면 외부 세계의 선물을 얻어내기 위한 위장술인가.

닐런=김 위원장의 위치는 불안정하다. 김정일은 김대중이라는 중요한 파트너를 얻었다. “JI가 유일한 친구 DJ를 얻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 아닌가(웃음). 김정일은 김대중을 ‘믿을 수 있다’고 본다. 차기 한국 대통령을 김대중만큼 믿을 수 있을까.

윌리엄스=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한국의 다른 차기 대통령보다 김 대통령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보다 김정일에게 편안한 파트너가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햇볕 정책’이 차기 정부에서 지속될지가 의문이다.

커크=한국의 정상회담 취재진이 풀(pool)로 운영된 점, 호텔 밖에 나가지 못한 점에 놀랐다. 기본적인 ‘자유’의 문제 아닌가. 한국 언론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리바오둥=이제 겨우 시작이다. 처음부터 모든 걸 바랄 수는 없다.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결혼할 수 없듯, 서로를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군 주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민감한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됐다고 보나.

닐런=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김대통령이 민감한 사안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뚜렷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이 ‘햇볕 정책’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 부족을 해소하지 못했다. 협상을 어렵게 만들지 않으려고 쉬운 방법을 택한 것같다.

오사와=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반도 만의 문제가 아니며, 중·미간 정면 충돌로 확대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산가족 상봉 등 정서적 문제로 접근한 게 현명했다.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중국이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는 등 한반도의 지정학적 ‘지진’을 예고하고 있다. 동의하나.

닐런= 한반도에는 미국의 국익이 여전히 많이 걸려 있다. 한국이 미국을 배제하긴 힘들다. 펜타곤 일부에선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해서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중요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커크=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의 방관자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 맺고 있는 관계는 깊다. 경제·군사·문화적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닐런=남북간 화해는 미국보다 일본에 더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를 안길 것이다. 재일 한국인 문제, 전쟁 배상 문제, 북한내 일본인 처(처) 문제, 일본인 납치 문제 등 일본 정부가 골치아픈 일을 맡게 될 것이다.

리바오둥=즉각적인 지정학적 구도 변화는 없겠지만, 길게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한중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중국은 남북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

오사와=일단 한반도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됐다는 게 중요하다. 김정일이 서울에 올 때까지 이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지만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미국의 일부 분석가들은 한반도 해빙 무드가 미·일 방위 동맹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가 미사일 방어(NMD) 체제를 해칠 것으로 보는데….

닐런=NMD 체제에 필요한 기술은 이미 개발됐다. 한반도 해빙무드가 NMD 구축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윌리엄스=무기는 기술만 확보되면 항상 개발된다.

커크=미·일 공조가 지금처럼 긴요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변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리바오둥=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북, 일·북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윌리엄스=조만간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심기와 의도가 드러날 것이다. 그 때 가봐야 각국의 대(대)한반도 정책 변화가 감지되리라 본다. 북한의 개방 이후가 주목된다. 동독의 경우, 개방이 시작되면서 체제 붕괴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이뤄졌다.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 관계 변화 가능성은.

닐런=중국은 이번 회담 최대의 수혜자다. 남북한 양국에 커다란 영향을 발휘하고, 양쪽으로부터 어떤 위협도 받지 않고 있다.

커크=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곧 방문한다. 러시아는 세계의 주역이 되기를 원한다. 한반도만큼 좋은 무대가 또 있겠는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

닐런=김정일을 더 보기 전엔 판단할 수 없다. 항상 숨어 지냈는데 어떻게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나. 물론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위대한 지도자’라면 북한이 왜 그런 고난에 처해있나.

커크=‘중학교 선생’이 딱 맞을 사람이다. 자신의 역량에 비해 너무 벅찬 역할을 맡고 있다고 봤다. “영리하다”라는 한국내 일부 시각을 이해할 수 없다. “기대치보다 높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주민의 80%가 굶주리는데, 협정 조인을 기념하며 샴페인을 마시는 등 호사로운 행동이 말이 되나.

리바오둥=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남한의 ‘김정일 쇼크’는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서울에서 김정일이 ‘과격한 정신병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유머 감각과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우리는 김정일의 이런 면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북한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과격한 정신병자인 지도자가 북한에서라고 견뎌낼 수는 없다.

오사와=한마디로 ‘혼란’이다. ‘김정일 쇼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정일이 남들이 말하는 만큼 이상한 인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번 회담에서 본 김정일의 모습은 쇼크였다.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는 줄 알았더니 자신만만했고 어떻게 보면 교만하게까지 보였다. 김일성인가 김정일인가 싶을 정도로 김일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번 회담은 ‘김정일을 위한 파티’였다는 시각이 있다. 김정일이 ‘국제적인 부랑자(outcast)’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나.

닐런=모두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것이다. 세계가 김정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김정일을 차갑게 주시하고 있다.

커크=김정일은 이미지 쇄신에 성공하지 못했다. 김정일이 김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안내한 어린이 병원·궁전, 김정일의 영화 촬영장 등은 어떤 외부인이건 항상 안내하는 ‘관광 코스’의 일부다.

오사와=극단적으로 보면 ‘1인극’이었다고 본다. 김정일은 독재자이고, 북한 체제가 당장 바뀔 리는 없다. 김정일이 큰 무대 위에서 주인공으로 연기한 것이다. 그러나 연기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하고, 연기였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리바오둥=김정일은 이번 회담의 주최자다. 그는 주인의 역할에 충실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말을 적게한 것은 손님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정리=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이자연기자 4nature@chosun.com

/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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