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고은·67)은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의 자격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하고 돌아온 직후인 15일 저녁 청와대 앞의 한 음식점에 앉았다. 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조선일보 청탁으로 시를 써오기로 했는데.

▲그 시를 14일 아침에 썼다. 그런데 강만길 교수가 그것을 알고 저녁 만찬장에서 낭독할 것을 제안했다. 통일원 장관이 장내에 공개적으로 소개했다. 그래서 읽게 됐다. 조선일보에 미안하게 됐다. 그 시를 낭독하자 장내가 다 좋아했다.

―동명왕릉에서 큰절을 하는 것을 보았다.

▲고주몽은 우리 고씨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큰절을 했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가?

▲민화협 위원장이자 사회민주당 위원장인 김영대를 만났다. 그는 사회문화를 책임지고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남북 학생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남북 통합의 문학독본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남북은 국어교과서가 다르지만 틀린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남북이 함께 공명하는 부분을 부교재로 만들어 문학독본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시인 교환방문, 문학작품의 무대가 됐던 곳을 상호 답사하자는 제안도 했다.

―개인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어떻게 보았는가?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면을 많이 보여주었다. 속에 있는 말을 에둘러 가지 않고 바로 털어놓는 면을 보였다. 그는 또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언어를 골라서 쓸 줄 알았고, 레토릭을 갖고 있었다.

―지난 방북(98년) 이후 불과 2년인데, 그 사이 달라진 점이 있다고 보는가?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보라. 옆에 있다 보면 비등점은 갑자기 시작되는 게 아니던가.

―체재 기간에 저녁에는 무엇을 했나?

▲술도 마셨다. 들쭉술, 산삼술, 뱀술, 포도주 그리고 독주 등이 구비돼 있었다. 일부 수행원은 술이 과해 이튿날 일어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그곳에 머물면서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했는가?

▲이번에 갈 때는 여권을 갖고 가지 않았다는 상징성을 되새겼다.

―만찬장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 대통령에게 그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 정치인들이 후회하게 만들자’고. 무슨 일을 하자고 했다가 의례적으로 끝나지 말고 실천 단계로 개척해나가자는 의미였다.

―이번 방북의 전반적인 소감은?

▲분명한 것은 이제껏 살아온 시대와 다른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 지나가는 것은 급격하게 탁 꺾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듭은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러한 느낌을 갖게 한 구체적인 디테일이 있으면 말해달라. 북한 주민, 안내원, 숙소, 길거리, 그 무엇이든, 공식적인 발표나 최고위 정치인들 말고, 디테일한 변화는 없었는가?

▲디테일이 다 바뀌어 우리(남측 사람들이)가 익숙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체제 유지 방식은 그대로 있고, 나는 손님이었으니, 예우는 예우대로 하고, 감시는 감시대로 했을 것이다. 영빈관에 들어가면 영빈관 자체가 일종의 통제 구역이다. 을밀대, 칠성대 등 가고싶은 곳을 갈 수가 없었다. 자유로운 이동 등 우리가 여기서 누리는 무한대에 가까운 자유는 물론 없었다.

―그쪽 예술공연을 어떻게 보았는가?

▲북한의 예술은 그동안 민족주의적 형식에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우리는 한의 예술, 한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북한은 한(한)보다는 흥(흥)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남북의 좋은 예술성을 교류하면 더 훌륭한 예술을 만들수 있을 것이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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