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찾은 한 조총련계 할머니는 아들과의 잠자리에까지 보위원이 끼어드는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할머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조총련계 방북자들과 함께 북한당국과 조총련에 항의를 했고, 이후 보위원이 잠자리에 끼는 일은 없어졌다.

또다른 조총련계 재일교포는 북한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조용필 노래를 틀었다. 즉각 보위원이 달려와 제지했지만 그는 보위원과 멱살을 잡고 싸우다시피 하며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친척들의 심장은 콩알만해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나온 신문을 깔고 앉았다고 해서 나무라는 보위원에게 “신문 사진에 불과한데 왜 그러냐”고 반박했던 재일교포 방문자도 있었다. 어떤 교포는 가족에게 줄 짐보따리를 가지고 갔는데 북한 관리가 한국 상품이라며 회수하려고 하자 자동차에서 휘발유를 뽑아 불을 질러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북한 당국은 이들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중국 조선족 교포들은 북한 사람들이 뭘 잘못하면 “김일성 김정일이가 그렇게 시켰냐”고 거침없이 내뱉기도 한다. 북한 관리나 주민들은 이 말에 화들짝 놀라지만 그뿐이다.

재일교포나 조선족들이 북한에서 얻어낸 말과 행동의 자유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북한 당국의 크고 작은 부당한 조치에 그들은 끊임없이 맞서 조금씩 고쳐 나간 것이다. 평양에만 국한됐던 재일교포들의 가족 방문도 그렇게 해서 산골 구석구석까지 넓힐 수있었다. 재일교포나 조선족들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따로 무슨 교육을 받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북한 방문은 어떤가. 북한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떠나올 때까지 행여나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까봐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당국의 사전교육도 이 같은 ‘조심’에 일조를 한다.

물론 일부러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왜 한국 사람이 북한에 가서 그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비위만 맞추어서는 그들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

재일교포와 조선족들이 수십년에 걸쳐 조금이나마 변화시켜 놓은 북한 당국의 태도를 한국 사람들이 거꾸로 돌려 놓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북한을 추종하는 조총련계 교포들보다 한국사람들이 더욱 북한에 주눅들고 벙어리처럼 행동한다면 북한 주민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