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통치의 요체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집권자는 인사를 통해 자신의 정책과 비전, 통치철학을 구현한다. 때문에 그 인사에는 집권자의 안목과 판단력 지혜 등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이 투영된다. 국무총리와 집권당 대표, 청와대 비서실장 등 「빅3」와 어제 있은 집권당 4역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 등 후속인사까지 보면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과 판단력에 이상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김 대통령은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석상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 「정치 선진화」를 강조했다. 집권당 신임대표도 「야당과의 대화」를 되풀이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보면, 집권측이 정말로 대화와 화합의 폭넓은 정치로 면목을 일신해 작금의 국정 난맥상을 극복해보자는 생각이 과연 있다는 것인지, 또한 앞으로는 무슨 개혁을 어떻게 해나가겠다는 것인지 모든 판독이 혼미해진다.

내각을 책임지는 이한동 국무총리 문제에서부터 이미 「개혁성」 운운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또한 집권 민주당의 대표 선정과정에서 벌어진 당내의 반발과 수용 거부는 「김대중 머신」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 내용에 이르면 김 대통령에게서 더 이상의 변화나 노선 수정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어렵게 된 게 아닐까 라는 허탈감에 빠진다.

대체 국회가 의결로써 해임 건의를 해 그에 따라 대통령이 그 자리를 물러나게 한 통일부 장관을 통일분야와 외교안보까지 다루는 장관급 특보 자리에 다시 기용하는 처사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단순히 오기정치 탓으로만 규정하고 덮어버리기엔 너무 섬뜩한 무엇이 있다. 그것은 어찌보면 국민의 따귀를 갈긴 것과도 같다.

국정홍보처장에서 새로이 공보수석으로 기용된 오홍근씨는 그동안 대통령을 비판하는 소리에 대해서는 그것이 국내든 해외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둘러대는 식의 홍보에 전념해온 인사이다. 그러한 보디가드(?)적 활약이 이번에 보상을 받은 것인지 모르지만 대통령 공보수석으로서도 그의 그런 방식이 계속된다면 정말 우려할 만한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민주당의 한광옥 대표는 당무회의가 「청와대의 대대적 개편」을 단서로 못박은 뒤에야 인준됐다. 민주당이 당4역 등 후속인사에도 불구하고 활기는커녕 썰렁하기만 한 것은 이번 청와대 개편내용의 황당함에도 영향받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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