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서 근무 중 탈북한 북한 간호사를 현지 한국대사관이 나서서 북한으로 돌려보낸 사건은 이 정권의 「햇볕정책」의 허상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외교부는 「북한 인도」에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탈북·망명의 문제다. 게다가 절차상으로도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그 간호사가 남한망명을 희망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 외교부의 주장이라면 그녀가 망명을 희망하지 않았다는 명시적 근거도 없다. 그녀는 작년 8월 12일 자신이 근무하던 리비아 의료센터를 이탈해 한 교민집에 은신했고, 닷새 후 북한대사관 요원들이 은신처인 농장으로 들이닥치자 신변위협을 느낀 그 교민은 그녀를 다른 교민 집으로 피신시켰다고 한다. 그녀가 「망명」과 같은 중대한 계획이 없었다면 「은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그것도 이집 저집을 옮겨다닐 필요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현지 북한대사관의 조처도 그녀가 망명을 희망했을 것이란 관측을 뒷받침한다. 현지 북한대사관은 그녀가 병원을 이탈하자 리비아 수사당국에 바로 「실종사건」으로 신고했으며 직집 요원들을 파견해 그녀가 은신해 있던 교민농장을 조사했다. 북한대사관측이 단순한 「영사사건」이었다면 그같은 행동을 했을까.

둘째는 현지 한국대사관측은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듣지 않고, 오히려 북한대사관의 「협조」요청에 응해 그녀를 북한에 보냈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직접 본인의사를 확인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녀는 8일 동안이나 교민집에 은신해 있었다. 게다가 현지교민들 중 일부는 그녀가 망명을 희망했다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그 간호사를 보호 중이던 교민이 북한으로 인도해달라는 의사를 밝혀와서』라는 상황만으로 북한대사관에 통보해줬다는 설명은 궁하기 짝이 없다. 설령 그 교민이 「북한인도 의사」를 밝혀왔더라도 현지 대사관은 직접 본인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도리다. 가장 기본적인 절차는 포기하고 북한의 협조요청에 덥석 응한 것은 그들이 어느 나라의 외교관인지 의심케 한다.

우리는 사건발생 시점이 6·15 정상회담 직후로 현정권이 가능한 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라는 정황을 믿고 있으며, 따라서 현지 한국대사관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동은 작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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