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으로 떠나는 날 아침, 납북당한 아버님이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정부당국자로부터 받았습니다. ”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15일 돌아온 인제학원 백낙환(백낙환·74) 이사장은 “살아계실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했었는데 방북 첫 순간부터 맥이 탁 풀렸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의 부친은 변호사였던 붕제씨. 인제학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에겐 열살 연하 동생이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인제·붕제씨는 일본 유학을 마친 뒤 30년대에 서울로 왔으며, 6·25 직후인 50년 7월 서울 흥사단 근처에서 함께 납북당했다.

백 이사장은 “북한으로 떠나기 전날엔 혹시 하는 기대감에 밤을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했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은 “그러나 북한에서도 아버님과 큰아버님에 관한 소식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백 이사장은 대신 북한에서 사촌형인 낙승씨의 아들인 경욱(55)씨와 장욱(51)씨를 만났다. 이산가족 기업인 자격으로 함께 방북한 장치혁(장치혁·68·고합회장) 남북경협위원장, 강성모(강성모·67) 린나이코리아 회장과 함께 숙소에서 차를 타고 15분쯤 달려 평양 교외의 한 호텔에 도착하니 그곳에 조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 위원장과 강 회장도 각각 혈육들을 만났다.

백 이사장은 “조카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고생으로 쭈글쭈글해진 조카들의 얼굴에 사촌형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며 “조카들에게서 자수를 선물받고, 달러를 주고 왔다”고 말했다. 조카들은 소나무가 유난히 곧았던 백 이사장 집 뒤 야산은 농지개간사업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이제 고향을 찾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산 반백년의 한을 풀어 가슴이 후련합니다. ”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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