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목격한 참담한 현실과 한국에서 겪은 권위주의적인 햇볕정책을 고발한 '미친 곳에서 쓴 일기'를 쓴 독일의사 폴러첸씨.

“내가 과연 지금 있는 곳이 서울인지 평양인지 모르겠다.”
작년 말 북한에서 추방된 뒤 서울로 온 독일의사 노베르트 폴러첸(43)씨. 그가 ‘미친 곳에서 쓴 일기(Diary of a mad place)’라는 제목의 책을 6일 출간했다.

북한 주민의 참담한 실상을 고발하지만 정작 타깃은 우리를 향해 있다. 햇볕정책을 내건 한국에서 자신이 겪은 ‘희한한’ 경험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한에서는 왜 그 누구도 북한의 저 끔찍한 현실에 대해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용기를 내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 소위 ‘강력한 국가’를 통해 이를 제재하려 드는 저 ‘햇볕정책’은 도대체 어떤 정책인가?”라고 책에서 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평양에서처럼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이런 식의 햇볕정책이라면 공산국가 북한과의 ‘우호친선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는 또 “한 인사로부터 ‘친정부적’인 언론기관과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해주면 김대중 대통령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와 함께 “워싱턴으로 떠나기 사흘 전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만났을 때 이들로부터 ‘기자회견을 주선해줄 테니 햇볕정책의 좋은 점을 담은 성명서를 내고 김대중 정부와 아무런 이견이 없다’는 얘기도 함께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지난 99년 비정부기구인 긴급의사회 ‘캅 아나무어’의 일원으로 북한에 들어가 의료활동을 폈다. 그 공로로 ‘공화국 친선 메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참담한 삶을 목격하고 서방 사회에 폭로하는 바람에 작년 12월말 추방됐던 인물이다.

6일 만난 그는 기자에게 “북한 주민의 참상을 떠들어대는 나는 마치 트러블 메이커(말썽꾼)처럼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방송 등 여론 매체는 나와 접촉을 피한다. 북한의 인권에 대해 떠들어도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국영방송 같다는 느낌이다. 정부에 좋은 얘기만 한다면 그건 언론 자유가 아니다. 신문사의 사주를 구속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한국에는 언론 자유가 있는 걸까. 과연 내가 북한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몹시 혼란스럽다. 그러나 나는 떠드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참상에 대해 침묵하는 한국의 지식인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한국인들은 예의가 발라서 그런지 불의를 고발하는 데 익숙지 않은 듯하다”고 한 뒤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울의 독일인 친구 집에서 기숙하며 혼자만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최보식기자 cong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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